[천자칼럼] 옥새
새(璽)는 일반적인 인장(印章)을 뜻한다. 옥새(玉璽)라는 이름은 진시황이 천하제일 옥(玉)이라는 화씨지벽(和氏之璧)으로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이때부터 옥새를 차지하는 사람이 천하를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동아시아에서 군주의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쓰였다.

고려와 조선의 옥새는 중국 황제로부터 받았다. 이를 받지 못하면 왕으로 공인될 수 없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즉위한 뒤 조선이라는 국호가 확정된 이듬해까지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고 새겨진 옥새를 써야 했다. 나중에 이를 명나라에 반환하고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을 새로 받았다.

옥새는 용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를 법제화한 ‘대전회통’에 따르면 중국과의 외교문서에는 대보(大寶), 관료 임명이나 국왕 명령서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일본과의 외교문서에는 이덕보(以德寶), 왕의 지시사항에는 유서지보(諭書之寶), 과거 합격증에는 과거지보(科擧之寶) 등을 썼다. 이 도장들은 모두 실무용이기에 궁궐에 보관했다. 의례용은 따로 종묘에 보관했다.

절대권력의 상징성 때문에 옥새는 숱한 피를 부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역모죄인으로 엮어 넣기 위해 가짜 옥새를 집안에 숨겨놓고 왕위를 넘본다는 상소로 음해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사극의 단골 소재다.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옥새의 명운도 엇갈렸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항복하면서 명의 옥새를 청나라에 바쳐야 했다. 청이 다시 발급(?)한 옥새에는 한문과 함께 여진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조선후기 왕의 도장을 대표한 이 옥새는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대한국새(大韓國璽)가 나올 때까지 쓰였다.

군주국인 일본에서는 아직도 옥새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같이 공화제 국가에서는 군주의 도장인 옥새 대신에 국새를 사용한다. 대한민국 국새는 헌법공포문 전문, 고위공무원 임명장, 훈·포장 증서, 중요 외교 문서 등에 쓴다. 옥새나 국새는 권위와 신뢰의 상징기호다. 서양 사람들이 친필 사인(sign)으로 서명하는 것과 달리 동양 사람은 규격화한 인장문화를 더 중시한다. 이런 관념 때문인지 도장만 손에 넣으면 모든 걸 장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공천 싸움 중에 벌어진 당 대표의 이른바 ‘옥새 파동’도 마찬가지다. 도장의 행방을 둘러싼 해프닝까지 이어졌다.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소극(笑劇)인지를 정작 정치꾼들만 모른다는 게 더 씁쓸하긴 하지만…. 이참에 도장 대신 사인으로 바꾸는 건 또 어떨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