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레베카' 등서 주역 꿰차며 종횡무진
단역부터 시작해 정상 우뚝
“5년 전에도 맘마미아 오디션을 보러 갔었어요. 도나, 타냐, 로지 역할은 이미 캐스팅이 끝난 뒤였죠. 무작정 오디션장에 가서 팝송을 불렀는데 음악감독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이번 공연에서 도나 역할은 새로 뽑지 않기로 했어. 근데 너, 앞으로 도나 맡을 것 같은데? 중년의 도나 역을 하기엔 아직 어리지만 목소리가 딱 도나야.’ 역할을 맡지 못했는데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5년 뒤 그는 최정원과 도나 역할을 번갈아 맡고 있다. 특유의 가창력으로 스웨덴 그룹 ‘아바’의 명곡을 능수능란하게 부를 뿐 아니라 코믹한 연기도 능청스럽게 소화해 낸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힘들다”며 “마냥 웃기는 캐릭터로 보이는 도나는 딸을 시집보내는 복잡한 내면 연기를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역부터 차근차근 밟고 올라온 배우다. 뮤지컬계에서 손꼽히는 ‘믿고 보는 주연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오디션에서 1등을 하고도 “신영숙이 누구냐”며 캐스팅에서 여러 번 밀렸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발레, 한국무용, 경극까지 배우며 기본기를 쌓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2008년 ‘캣츠’에서 그리자벨라를 맡으면서 뮤지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010년 ‘모차르트!’에서 남작부인 역할을 맡아 대표곡 ‘황금별’을 소화하며 ‘황금별 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니아 팬도 생겼다.
그는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단역인 손탁 부인을 맡았을 때 회식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이 다음에 꼭 명성황후를 맡을 거예요.” 이 말을 기억하고 있던 명성황후 제작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지난해 20주년 공연 때 그를 명성황후로 무대에 세웠다.
“지난해에는 공연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토요일에는 명성황후, 일요일에는 레베카를 공연했어요. 매일 공연 전에 혼자 연습실에 가서 ‘런-스루(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끊지 않고 진행하는 연습)’를 했어요. 혹시나 실수할까 봐요. 맘마미아를 연습할 때는 레베카 공연과 기간이 겹쳐 연습 시간이 나지 않아 혼자 울기도 했어요. 밤새도록 곡을 외웠죠. 그렇게 스스로를 들볶는 스타일이에요. 제 성대가 튼튼해서 정말 다행이죠, 하하.”
도나의 꿈을 이룬 지금, 또다시 꿈꾸는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고 싶은 역할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예전처럼 작은 역할이라도 애착을 가지고 노래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맘마미아’ 공연을 제대로 즐기면서 잘 끝마치고 싶어요. 아줌마·아저씨 관객이 환호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그렇게 신나는 순간이 없더라고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