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개발업체 등 기술력 있는 소규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마련한 자금이 최근 5년 새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18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6800억원으로 증가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과 협업해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자금은 AI와 로봇, 사물인터넷(IoT) 개발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될 예정이다.
삼성 "AI·로봇·IoT에 미래 달렸다"…스타트업 펀드 5년새 3배 늘려
◆‘스몰딜’ 투자자금 6800억원 마련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벤처투자가 삼성전자로부터 출자받아 조성한 펀드 규모는 2011년 약 1800억원에서 지난해 말엔 약 6800억원으로 커졌다. 삼성전자의 외부기업 투자는 삼성전자가 직접 인수합병(M&A)을 하거나 삼성벤처투자가 스타트업에 지분투자를 하는 등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소규모 기업에 투자하는 ‘스몰딜’은 대부분 삼성벤처투자가 맡는다.

삼성벤처투자의 펀드 규모는 2011년엔 2000억원에도 못 미쳤고 2013년에도 2500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4년 이 부회장이 삼성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빠르게 불어났다. 2014년과 2015년엔 각각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삼성벤처투자에 출자됐다.

6800억원의 투자자금은 크게 네 가지 용도로 나뉘어 쓰인다. 2000억원은 반도체 등 부품 관련, 2000억원은 스마트폰 등 완제품 관련 기업에 투자된다. 2000억원은 어느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기술이 뛰어난 기업을 위한 몫이고, 나머지 800억원은 소재 등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투입된다.

삼성은 종전엔 모든 기술을 계열사로 흡수해 관리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을 이끌기 시작한 뒤에는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고 외부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수많은 기술을 관리하다보면 조직 운영 속도가 느려지고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부회장의 판단이다. 대신 소규모 자금을 많은 기업에 투자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이 중 장래성이 보이는 아이디어를 실제 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스타트업 투자 결실 맺는다

삼성은 스타트업에 단순히 지분투자만 하지 않는다. 대부분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스타트업의 신기술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스타트업은 삼성의 하드웨어를 이용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다.

투자에 따른 상품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얼리센스와 함께 개발한 수면분석센서 ‘슬립센스’가 대표적이다. 슬립센스는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넣어 두면 사용자의 수면 패턴을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기기다. 삼성은 이 제품을 조만간 싱가포르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모든 침대에 장착할 계획이다.

최근엔 로봇, AI, IoT 기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엔 가정용 로봇 스타트업 지보, AI 업체 비카리우스, IoT용 네트워크 기술을 갖춘 필라멘트 등에 투자했다. 이 외에 스마트카 플랫폼을 구축하는 빈리, 빅데이터를 활용해 건강관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다카두 등 알려진 투자만 20여건에 이른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의 스몰딜 투자는 구글, 애플 등 경쟁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미국 실리콘밸리는 물론 이스라엘, 중국, 한국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계속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