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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대결 결과와 관계없이 승자는 인류가 될 것입니다.”

세계 최고 프로바둑 기사와 인공지능(AI) 간 대국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깜짝 등장한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밋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강의 프로 바둑기사로 꼽히는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첫 대결을 펼친다. 오는 15일까지 총 다섯 번 대국을 진행한다. 바둑은 직관력과 계산력을 함께 동원해야 하는 게임으로 그동안 인공지능이 정복하기 어려운 과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 2단과 겨룬 대국에서 5 대 0으로 승리하면서 주목받았다.

“이번 게임의 승자는 인류”

슈밋 회장은 “컴퓨터 과학자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에 대한 희망을 품어왔다”며 “1960년대부터 30여년간은 인공지능의 혹한기였지만 최근 10년 새 큰 변화를 이루며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의 발전이 있을 때마다 인간 모두가 더 똑똑해지고 유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밋 회장은 이어 “인공지능 기술은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며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관력 보유 여부가 관건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알파고는 판후이 2단과 대국을 치른 작년 10월과 비교해 더욱 강력해졌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알파고가 자가학습으로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생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딥마인드는 알파고에 사람의 뇌신경과 비슷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바둑기사들의 대국을 바탕으로 3000만개의 수(手)를 추출해 알파고의 신경망을 훈련시켰다.

하사비스 CEO는 알파고가 돌의 위치를 계산하는 ‘정책망’으로 탐색의 범위를 좁히고, 승률을 계산하는 ‘가치망’으로 탐색의 깊이를 좁힌다고 덧붙였다. 계산해야 하는 경우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진 직관력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9단은 “인간의 직관력, 감각을 인공지능이 따라오기 힘들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알파고는 어느 정도 직관을 모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5 대 0으로 승리하는 확률까지는 아닌 것 같다”며 “실수하면 패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드러냈던 예전 태도와 달리 자신의 승률을 다소 낮춰 전망한 것이다.

홍보효과 대박난 구글이 진짜 승자

이번 대결로 구글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홍보효과를 거뒀다. 구글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들인 돈은 상금 100만달러를 포함해 2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세기의 대결’에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구글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 인공지능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구글의 앞선 기술력을 알릴 수 있었다.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진짜 승자는 구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구글 알파고 VS 이세돌 9단 대국 주요 내용

●날짜 : 1국(9일) 2국(10일) 3국(12일) 4국(13일) 5국(15일)

●시간 : 오후 1시

생중계 : 지상파 3사(첫 대국은 KBS), 바둑TV, 유튜브, 네이버 등

●장소 :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특별 대국장

●상금 : 100만달러(알파고가 이기면 자선단체에 기부)

●국문 해설 : 유창혁 9단·가수 김장훈(1,5국) 김성룡 9단(2국) 이희성 9단(2,3국) 홍민표 9단(3,4국) 이현욱 8단(4국)

●영문 해설 : 마이클 레드먼드 9단

규칙 :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5집을 인정하는 중국식 룰, 기사별로 2시간씩 부여, 제한시간 모두 사용 시 각각 1분 초읽기 3회씩 제공, 총 대국 시간은 4~5시간 예상.

구글 딥마인드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데미스 하사비스가 2011년 설립한 인공지능(AI) 연구 전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구글이 2014년 4억달러에 인수했다. 기계학습(머신러닝)과 시스템 신경과학 분야의 기술을 활용한 범용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알파고(AlphaGo)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시스템. 바둑을 영어로 ‘고(Go)’라고 한다. 인공 신경망의 일종인 정책망과 가치망을 결합한 기술을 사용한다. 정책망은 다음 착점 후보를 추려내고, 가치망은 어떤 착점이 놓인 뒤 승리 가능성을 예측한다. 다음 착점을 예상한 알파고의 적중률이 최근 57%까지 향상됐다.

딥러닝(deep learning)

컴퓨터가 여러 데이터를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인공 신경망(ANN: artificial neural network)을 기반으로 한 기계 학습 기술. 인지·추론·판단 능력이 있어 음성·이미지 인식과 사진 분석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구글 알파고도 딥러닝 기술에 기반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중국 룰

중국의 바둑 규칙. 가장 큰 특징은 계자제(計子制)로 바둑판 위에 살아 있는 돌과 집을 모두 계가해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다. 바둑판 위에 지어진 집의 수만 계산하는 한국과 차별화된 부분. 이 때문에 중국 룰에서는 공배를 메우는 게 나중에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백을 잡은 기사에게 주는 덤도 한국 룰보다 한 집 많은 7.5집이다. 중국식 규칙을 도입한 건 알파고 프로그램이 18개월간 중국 쪽 규칙으로 개발과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