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公共) 발주공사 적자를 우려한 건설회사들이 입찰을 기피하면서 대형 기반시설 사업들이 표류하고 있다.

삼성(서울)~동탄(경기 화성) 광역급행철도(GTX),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밀양 구간, 서울지하철 4호선 진접 연장선 등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예산을 확보하고도 시공사 선정에 잇따라 실패했다. 당초 예정된 기반시설 완공 시기를 감안해 아파트 등을 분양받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는 8월 개통을 앞둔 수서~동탄 고속철도(KTX) 수서역 등 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 선로를 공유할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GTX) 역사는 시공사 선정에 실패해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오는 8월 개통을 앞둔 수서~동탄 고속철도(KTX) 수서역 등 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 선로를 공유할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GTX) 역사는 시공사 선정에 실패해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삼성~동탄 GTX 개통 늦어진다

삼성~동탄 GTX는 수도권 남부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그러나 일부 공구의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2020년으로 예정된 개통이 2~3년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분양이 한창인 동탄2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 예정자들은 GTX 건설비 1조5547억원의 절반이 넘는 8000억원의 비용을 부담(아파트 분양가에 포함)하고 있다. GTX가 개통되면 동탄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18분이면 닿는다. 현재 GTX 역사(驛舍)와 운행시설 등을 짓는 공사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경기 하남~과천시 간 노후 수도관 등을 개선하는 ‘수도권 광역상수도 용수공급 신뢰성 제고사업’(1공구)도 연이은 입찰 무산으로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낙후된 부산 남서부 개발을 위한 부산지하철 5호선(가칭)도 같은 이유로 예산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공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요 국가전략시설 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충남 공주시 정부통합전산센터 사업은 지난달 21일 입찰까지 일곱 차례 시공사 선정에 실패하며 3년째 표류하고 있다. 정부 문서를 보관하는 이 센터는 유사시 전자기펄스(EMP) 공격에 대비한 벙커형 시설이다.
시공사 못 찾는 SOC사업…서울지하철 4호선 연장 3년째 '표류'
◆수천억원 공사, 단순 하도급으로

장기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한 사업은 결국 수의계약 또는 최저가(종합심사) 입찰로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공사와 한국전력의 ‘500㎸ 북당진~고덕 지중 송전선로 건설공사’ 등 수천억원 규모의 사업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단순 하도급에 가까운 최저가 입찰은 소규모·단순공사에 주로 쓰이는 발주 방식이다. 기술 평가를 중시하는 턴키와 비교하면 부실공사 가능성이 있고 공사비도 당초 예상보다 많이 들 수 있다. 또 수의계약은 발주처-건설사 간 특혜 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사 조건 협상 등에서 발주처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러나 이 같은 발주가 현재로선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선우 국토교통부 기술기준과장은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운영돼 온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작년 실적공사비를 폐지하고 도입한 표준시장단가 제도가 자리 잡으면 입찰이 적기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와 철도시설공단 등도 부산지하철 5호선, 삼성~동탄 GTX 등의 공사를 수의계약 혹은 최저가 입찰로 추진할 예정이다.

◆공사비 10년간 36% 하락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은 건설회사들의 담합 관행이 사라지자 공공 입찰제도의 허점과 정부의 불합리한 공사비 책정 등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예정 공사 가격이 36%가량 떨어지는 등 공공 공사 사업성이 크게 나빠져 담합 등의 관행으로 시장이 유지돼 왔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최근 건설회사들의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내부적인 수익성 검증도 엄격해졌다. 삼성물산은 국내 공공 건설시장에서 철수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특정 공사를 대형 건설사 한 곳이 준비한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회사가 알아서 피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업을 따도 수익이 많이 남지 않는데, 수주에 실패하면 설계비만 날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턴키 입찰

설계·시공 일괄 입찰. 기술력이 필요한 대형 공사에 주로 쓰이는 방식. 신기술을 적용해 공사비 절감, 공기단축 등이 가능하다.

■ 최저가낙찰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는 건설사가 낙찰 받는 방식으로 중소 규모 단순공사에 주로 쓰임. 부실공사를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 종합심사낙찰제

최저가낙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격 외에도 공사수행 능력, 사회적 책임 등을 심사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