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확인했다. 관료와 업자들 간의 강고한 카르텔이 어떻게 규제의 철옹성을 쌓고 있는지를.

최근 이슈가 된 심야 콜버스가 이런 규제 생태계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국토교통부가 호기롭게 콜버스를 허용하는 듯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규제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진입 규제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은 기존 택시·버스사업자에만 콜버스를 운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규제를 푸는 척하면서 안전을 명분으로 신규 진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국토부는 승객호출 앱(콜버스 앱)은 누구나 가능하므로 진입 규제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는 콜버스앱은 되고 콜버스는 안 된다는 해괴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살릴 것만 살리라”는 며칠 전 대통령의 지시는 이처럼 현장에서 희한하게 변질돼 버렸다.

콜버스는 심야시간에 승객은 넘치는데 택시가 턱없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밤 12시~새벽 1시에 서울시내엔 택시가 5300대 부족하다고 한다. 승객 골라 태우기, 승차 거부가 만연하는 이유다. 하지만 국토부는 기존 업자들이 만들어낸 서비스 공백을 반드시 기존 업자를 통해서만 메우라고 몰아가고 있다. 물론 국토부 관료들이 업자의 로비에 굴복해 이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여태껏 규제를 다루던 관행이 그랬기 때문이다.

규제는 이렇게 생산되고 작동하고 있다. 어떻게든 신규 진입을 막으려는 기존 업자들과, 이들을 봐주거나 집단 반발이 두려운 관료들은 합작으로 규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면허·특허·인증이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서, 허가·신고·등록을 해야 하는 모든 방법으로 규제의 철옹성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업자는 업자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진입 규제의 칸막이를 높여간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경쟁이나 혁신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푸드트럭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소위 동반성장, 상생, 갑을 등 경제민주화 꼬리표를 단 정책들마다 덩어리 규제로 둔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기존 업자에게 비토권을 주어 이권을 보장하는 구조를 가졌다. 관료들은 예산과 규제권력으로 이를 뒷받침해준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지방에 점포를 내려면 상생협의 명목으로 지역 생산품을 사주고 지역 도매상을 거쳐야만 한다. 백화점도 지방도시에 점포를 내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별도 법인을 세우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OECD가 한국의 소매유통 분야의 규제를 완화해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것을 권고할 정도다.

설상가상 지자체들은 기존 업자들의 도장을 받아와야 인가해준다. 일자리보다 기존 업자의 반발 무마와 이익 보호가 급선무다. 싸구려 정치가 이권을 구조화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포위한 꼴이다. 이런 강고한 밀착관계는 정치 프로세스로 더욱 강화된다. 기존 업자들은 특권과 진입 규제로, 관료들은 퇴직 후 전관예우로, 정치인들은 선거의 표로 각자 이득을 누리며 공생하는 구조다. 이런 배타적 공생관계는 지방자치제 20여년의 그늘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중세 길드(동업자조합)와 조선시대 금난전권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장을 잘게 쪼개 기득권화할수록 경제는 나빠지고 혁신은 차단된다. 배타적 기득권과 관료들의 규제권력이 밀착하는 한 규제개혁은 공염불이다. 콜버스 소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