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애플-FBI '보안 갈등'의 메시지
아이폰 잠금기능 해제를 둘러싼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대립이 미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 미국 법원은 FBI가 샌버너디노 총기 테러 수사를 위해 용의자의 아이폰 정보를 볼 수 있게 애플이 협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정면 거부했다. 미 법무부까지 “애플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법원 명령 이행을 촉구했다. 애플 측은 “아이폰의 보안기술을 무력화하는 ‘백도어(뒷문)’를 만들라는 요구는 아이폰 사용자의 정보 보호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암호를 풀 능력이 없다고 자인한 FBI는 망신살이 뻗쳤다. 아이폰 잠금기능 해제에 100년 넘게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애플은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프라이버시와 국가안보 충돌

미국 사회는 둘로 갈렸다. 페이스북, 구글 등 미 정보기술(IT)업계는 애플을 지지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8~21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51%가 “잠금 해제 찬성”, 38%는 “해제 반대”였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안보의 충돌이다. 미 수사당국은 테러범의 아이폰에만 해당될 뿐 다른 사용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플은 “백도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반대한다. 프로그램이 한 번 만들어지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수사기관에 통화 내역 등을 제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보안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애플도 테러범이 클라우드에 백업한 자료는 FBI에 제출하는 등 수사에 협조해왔다.

하지만 아이폰에 대해서만큼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최고라 자부해온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IT 전문가 제이슨 블룸버그는 포브스 칼럼에서 “애플의 행동이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언론들은 대법원까지 가는 긴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나도 애플에는 불리할 게 없어 보인다.

빅데이터 시대 걸맞은 정보보호

애플과 FBI의 대립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개인정보 수집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인정보 보호 법률을 고쳤다. 하지만 지금은 빅데이터 시대다. 개인의 소셜 데이터와 위치 정보 등 일거수일투족이 디지털화돼 수집·관리된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모든 기기가 연결되는 초(超)연결 세상이 머지 않았다. 이런 변화를 반영해 개인정보 보호 법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쪽에서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IoT 등 신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빅데이터 시대의 정보 유출 사고는 아이폰 잠금해제 논란의 차원을 넘어 수백만, 수천만명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빅데이터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 보호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할 때다.

기업들도 적극적인 개인정보 보호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애플과 FBI의 대립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논란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양준영 국제부 차장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