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현 작가(사진)는 화학 원리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 드문 예술가다. 길 작가는 오는 9월까지 대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열리는 ‘화학과 우주’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 26점을 전시한다.

그는 완성된 결과로서 작품이 아니라 과정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길 작가는 15년 전 요소 결정법을 작품에 도입했다.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가 1828년 시안산암모늄을 가열해 만든 요소는 인간이 처음 합성한 유기화학물질이다. 작가는 요소 결정이 형성되고 점점 커지는 화학적 성장 원리를 이용해 생명의 시작과 성장을 표현했다. 태초 생명이 태동한 우주를 표현한 ‘케미스트리 트리’는 요소 용액이 굳으면서 입체적인 눈꽃 결정체를 이루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작품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자신의 작업노트 첫머리에 “이것은 한 방울에서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작가는 바닷물을 건조하면 소금 결정이 성장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소금과 설탕 등 온도와 습도, 건조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 결정이 생기는 소재를 찾아나섰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케미스트리(화학) 아트’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이런 목적에 맞춰 꾸몄다. 경남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작업실은 마치 화학실험실을 옮겨놓은 모습이다. 각양각색 물감통 옆에는 물감 농도를 맞추는 저울이 있고, 건조 과정을 실험하는 방도 있다. 길 작가는 “장마철에는 그림이 건조되지 않아 걱정하고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결정이 너무 자랄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 버려진 작품만 수십개에 이른다.

길 작가는 생명의 성질을 잘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소 결정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부서지는 과정이야말로 생명의 탄생과 성장, 소멸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