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의 붓질로 한국화의 전통과 현대적 접점을 모색하는 김 화백이 15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먼동(날이 밝아올 무렵의 동쪽)’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그는 특유의 세밀하고 사실주의적인 화풍의 인물화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묘사한 작품 20여점을 내놓는다.
한때 그림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이제는 그림이 사회 속에 녹아 들어가 현대인의 얼룩진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치열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조금 다급해 보입니다. 이제는 어둠이 걷히면서 빛이 새어 나오는 먼 동쪽 하늘을 보며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야 합니다.”
섬진강 인근에서 직접 만든 전통한지로 작업하는 작가는 대상을 마치 암호처럼 화면 위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숨막힐 듯한 일상은 동쪽에서 막 피어난 일출처럼 그렇게 그림이 됐다. 여백이 압도적인 텅 빈 화면에는 은유와 상징, 풍자와 비유만이 가득하다. 인문학적 회화의 격조를 잃지 않으면서 서정적 감수성은 오히려 깊어졌다.
김 화백은 시각예술에 대한 인문학적인 물음과 성찰을 일상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의 작품들은 삶의 근본에 대해 성찰하게 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한다.
고양이가 풍경(風磬)을 쳐다보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관음’은 인문학적 회화의 대표작이다. 고양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풍경의 이미지를 조합한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소소한 이야기를 하얀 여백에 채우게 한다. 관람객이 오감을 동원해 느끼는 감성은 ‘그림이면서 그림이 아닌 인문학적 시각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김 화백은 “인물화도 사람의 외형을 그리기보다는 한 인간의 삶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굴 없는 스님의 초상화에 ‘광불’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놓았다. 김 화백은 “소탈하고 인간적인 스님의 내면이 담겨 있는 초상화”라며 “얼굴에 이목구비를 지워낸 그 여백에 관람객들로 하여금 스님의 정신세계와 학문적 성과, 인품을 채워넣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반신의 형체만 그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앞 뒤’, 애절한 그리움에 숨 막혀 소치 허련의 작품을 복원한 ‘초의 선사’,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을 차지게 그린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새벽은 오지 않는다’ 등은 1990년대 전통적인 수묵화를 문학적 감각으로 소화해 크게 주목받았던 그의 필력과 남다른 관찰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들이다. 물고기 한 마리만 덜렁 그린 ‘물’을 비롯해 ‘물잠자리’ ‘호박’ ‘거미’ ‘파리채’ ‘무꽃’ 등도 관람객의 현학적인 상상력과 어우러진 인문학적 회화의 힘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에 맞춰 서화집 《모든 벽은 문이다》를 출간했다.(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