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에어컨 상단에 회오리 모양을 연상하게 하는 동그란 바람구멍이 세 개 뚫려 있다.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 4년째 유지하는 에어컨 디자인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새로운 에어컨을 내놓고 있지만 큰 틀에서의 디자인은 바꾸지 않고 있다. 그전에는 매년 에어컨 신제품을 내놓을 때 디자인을 바꿨다.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이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은 삼성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DI·디자인 정체성)를 갖기 위해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누가 봐도 삼성 제품인 줄 알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보쉬 제품은 멀리서 봐도 보쉬 제품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삼성 에어컨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내부에선 ‘삼성만의 이미지가 없다’는 고민이 많았다. 경영진은 차별화도 중요하지만 삼성전자의 가전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축, 지속하기로 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유지하면서 기능, 콘셉트 차원에서만 차별화를 꾀했다.

이동욱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차장은 “겉으로 보기에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품부터 기능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다”며 “큰 틀에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제품을 차별화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공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