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북한에선 설에 떡국 안 먹어요. 설 명절 밥상만 봐도 남북한이 얼마나 다른지 보이죠.”

‘탈북 여성 1호 박사’이자 북한 요리 연구자로 유명한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52·사진)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3일 서울 낙원동 북한음식 전문점 능라밥상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능라밥상은 이 원장이 새터민들과 함께 운영 중인 식당으로, 해주비빔밥과 평양냉면 개성무찜 감자만두 등 다양한 북한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신의주경공업대 식료공학부를 졸업하고 식품품질감독원으로 일하다 1997년 탈북한 이 원장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새터민의 정착을 돕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공로로 2010년 미국 국무부로부터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을 받았다. 그는 “요리 교류를 통해 70년 넘게 분단된 남북 간 가교역할을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원래 고향이 평양인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6·25전쟁 때 월남한 게 알려져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열 살 때 가족이 평양에서 양강도로 쫓겨났다”며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며 지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북한 각지의 음식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북한에선 양력 1월1일을 음력설보다 더 크게 여긴다. “음력설을 따르는 건 봉건주의의 잔재”란 이유에서다. 1989년부터 음력설도 민속명절로 인정했지만 가족이 모여 세배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인사하는 등의 행사는 대개 양력 1월1일에 한다.

이 원장은 “북한에선 설에 만둣국과 국수 순대를 주로 차리는데 담백하게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도록 만든다”며 “평안도와 황해도는 만둣국, 함경도에선 감자 농마(녹말의 방언)국수를 먹고, 순대와 돼지고기 편육은 북한 어느 지역에서든 먹는 보편적인 명절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또 “개성에선 조랭이떡국을 해 먹는데 남한의 떡국과는 형태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여기서 ‘개성 왕만두’란 말을 보면 어리둥절합니다. 개성엔 왕만두가 없거든요. 요리할 때 큼지막하게 하지 않으니까요. 만두든 떡이든 개성에선 북한의 다른 지역과 달리 아담하게 만들어요.”

그는 “북한에선 배급제를 실시하는 데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일반인들은 전통음식을 제대로 해 먹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렇지만 국가 차원에서 ‘조선요리협회’를 통해 전통요리 기록을 집대성했는데 그와 같은 관련 자료 정리는 한국보다 훨씬 잘 돼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 이 원장은 “남북이 서로의 음식을 너무 모른다는 게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북한 음식이라고 알려진 요리 중에 실제와 다른 게 참 많아요. 여기서 즐겨 먹는 함흥냉면도 개성 왕만두 같은 경우죠. 함흥에선 고구마가 나지 않아 고구마 전분을 쓰지 않아요. 홍어회가 아니라 가자미식해나 북어무침을 고명으로 올리죠.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요리 방식이 바뀌었을 텐데, 원형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