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이너스통장' 맘대로 못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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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만성적자 메우는 용도로 쓰지 말라" 제동…"남용하면 통화정책 교란"
"양특회계 1조1000억원 연내 상환계획 마련하라"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
"가뜩이나 세수 부족한데 적자국채 상환 더 어려워져"
"양특회계 1조1000억원 연내 상환계획 마련하라"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
"가뜩이나 세수 부족한데 적자국채 상환 더 어려워져"
정부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리는 차입금에 대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부가 쌈짓돈처럼 빌려 써온 ‘일시차입금’에 대해 ‘발권력 남용’이라며 상환계획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은의 일시차입금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손쉽게 메우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부족한 세수로 적자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와 한은 일부에선 돈 찍어 정부에 조달하는 행위를 선진국처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악성 부채부터 갚아라”
한은 금통위는 지난 14일 본회의에서 올해 정부가 빌릴 수 있는 일시대출금 한도를 총 40조원으로 의결했다. 한도액은 국회가 이미 승인한 것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다만 금통위는 새 부대조건을 달았다. 정부가 한은에서 빌린 ‘양곡관리특별회계’의 기존 차입금에 대해 상환계획을 부처 간 협의해 마련하고, 상환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라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가 구체적인 상환계획까지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발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일시대출금 제도는 정부가 걷은 돈(세수)보다 쓸 돈(세입)이 많을 때 일시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한은에서 부족분을 빌리는 제도다. 한은은 그만큼 돈을 발행해 정부에 조달한다. 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가 재정증권(적자국채)을 발행할 수도 있지만 입찰 등 절차가 길게는 몇 개월씩 걸린다.
돈값 떨어뜨릴라
따라서 정부는 손쉬운 일시대출금 제도를 적극 활용해왔다. 재정 조기집행 등으로 세수가 부족해지자 정부의 일시차입금은 2013년 74조원(누적 기준)까지 급증했다. 한 해 부담한 이자만 2644억원에 달했다. 국회 지적이 잇따른 뒤 차입금 규모는 2014년 33조원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51조원으로 늘었다.
금통위에선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시차입금은 돈을 발행해 조달하는 것이므로 통화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서다. 돈값을 떨어뜨리고 통화정책을 교란할 수 있다.
정부가 일시차입금을 만성적인 적자를 해결하는 데 악용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금통위가 문제 삼은 양곡관리특별회계가 그런 경우다. 양곡관리특별회계는 만성적인 적자를 한은 차입으로 메워오고 있다. 2007년까지 1조1172억원을 빌린 뒤 매달 상환과 대출을 거듭해 장기차입금처럼 써왔다는 지적이다. 금통위는 이 금액부터 상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일시차입금 제한해야’ 논란도
정부도 뾰족한 수는 없다. 양곡관리특별회계는 농가에서 쌀을 매입해뒀다가 쌀값이 올랐을 때 푸는 식으로 시장 안정 역할을 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 소비는 줄어드는데 농가 소득 때문에 매입가격은 못 깎아 만성 적자”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작년엔 역대 두 번째 대풍작이었다. 적자가 심해지자 작년 말 농식품부는 한은에서 1629억원을 추가 차입했다.
기획재정부와 농식품부는 올해 기존 차입분을 상환할 방침이지만 일반회계의 세수로 충당하는 방법밖에 없어 고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발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운신의 폭은 좁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국에선 중앙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한다”며 일시차입금 활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고금관리법 개정안’을 2014년 제출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국회의원으로 있던 2010년 “고정부채로 변질된 양곡관리특별회계의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 양곡관리특별회계
양곡관리법 등에 따라 정부가 쌀 수매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특별회계로 1950년 도입됐다. 생산자 보호를 위해 비싼 값에 사들여 싼값으로 팔아 결손이 누적되고 있다.
김유미/김주완 기자 warmfront@hankyung.com
한은 금통위는 지난 14일 본회의에서 올해 정부가 빌릴 수 있는 일시대출금 한도를 총 40조원으로 의결했다. 한도액은 국회가 이미 승인한 것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다만 금통위는 새 부대조건을 달았다. 정부가 한은에서 빌린 ‘양곡관리특별회계’의 기존 차입금에 대해 상환계획을 부처 간 협의해 마련하고, 상환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라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가 구체적인 상환계획까지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발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일시대출금 제도는 정부가 걷은 돈(세수)보다 쓸 돈(세입)이 많을 때 일시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한은에서 부족분을 빌리는 제도다. 한은은 그만큼 돈을 발행해 정부에 조달한다. 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가 재정증권(적자국채)을 발행할 수도 있지만 입찰 등 절차가 길게는 몇 개월씩 걸린다.
돈값 떨어뜨릴라
따라서 정부는 손쉬운 일시대출금 제도를 적극 활용해왔다. 재정 조기집행 등으로 세수가 부족해지자 정부의 일시차입금은 2013년 74조원(누적 기준)까지 급증했다. 한 해 부담한 이자만 2644억원에 달했다. 국회 지적이 잇따른 뒤 차입금 규모는 2014년 33조원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51조원으로 늘었다.
금통위에선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시차입금은 돈을 발행해 조달하는 것이므로 통화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서다. 돈값을 떨어뜨리고 통화정책을 교란할 수 있다.
정부가 일시차입금을 만성적인 적자를 해결하는 데 악용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금통위가 문제 삼은 양곡관리특별회계가 그런 경우다. 양곡관리특별회계는 만성적인 적자를 한은 차입으로 메워오고 있다. 2007년까지 1조1172억원을 빌린 뒤 매달 상환과 대출을 거듭해 장기차입금처럼 써왔다는 지적이다. 금통위는 이 금액부터 상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일시차입금 제한해야’ 논란도
정부도 뾰족한 수는 없다. 양곡관리특별회계는 농가에서 쌀을 매입해뒀다가 쌀값이 올랐을 때 푸는 식으로 시장 안정 역할을 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 소비는 줄어드는데 농가 소득 때문에 매입가격은 못 깎아 만성 적자”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작년엔 역대 두 번째 대풍작이었다. 적자가 심해지자 작년 말 농식품부는 한은에서 1629억원을 추가 차입했다.
기획재정부와 농식품부는 올해 기존 차입분을 상환할 방침이지만 일반회계의 세수로 충당하는 방법밖에 없어 고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발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운신의 폭은 좁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선진국에선 중앙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한다”며 일시차입금 활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고금관리법 개정안’을 2014년 제출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국회의원으로 있던 2010년 “고정부채로 변질된 양곡관리특별회계의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 양곡관리특별회계
양곡관리법 등에 따라 정부가 쌀 수매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특별회계로 1950년 도입됐다. 생산자 보호를 위해 비싼 값에 사들여 싼값으로 팔아 결손이 누적되고 있다.
김유미/김주완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