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덕선역 혜리
"정환에 대한 마음,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죠"


날이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니었다.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는 날은 산해진미가 그득한 잔치날이었다. 쌍문동 4인방. 정환(류준열), 택(박보검), 선우(고경표), 동룡(이동휘)은 '짠 내' 물씬 나는 방송 지분으로도 안방극장 여성 시청자들의 응답을 받고야 말았다. 네 가지 유형의 '판타지'는 거부할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므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근무 환경. 2015년 11월 첫 방송부터 3개월여 동안 그들의 사각지대를 면밀히 훑어 온 덕선에게 물었다. 지구상에 남자라곤 그 '쌍문동 4인방'만이 남아 있다면 누구를 택할 것이냐고. 아, 물론 작품에서의 남편은 ‘택’이지만 말이다. <편집자주>
'응답하라 1988'의 혜리는 '쌍문동 사람들'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 여긴다. /사진=변성현 기자
'응답하라 1988'의 혜리는 '쌍문동 사람들'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 여긴다. /사진=변성현 기자
[김예랑 기자] "푹 쉬다왔어요"라며 말갛게 웃는다. 예전보다 조금 더 그을린 피부와 새하얀 치아는 간극이 컸지만 저절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 모두가 그렇게 느꼈듯, 기분을 즐겁게 하는 건강한 미소다.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헤로인 혜리를 드디어, 만났다.

'응팔' 종영 후 출연진, 제작진은 모두 포상 휴가 차 태국 푸켓을 다녀왔다. 입국하자마자 혜리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아직 '혜리'라는 연예인이라기보다 '덕선'이라는 사랑받아 마땅한 캐릭터로 인지되는 지금.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은 '끝사랑은 가족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쌍문동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여주인공 덕선의 '남편 찾기'는 기록적인 시청률의 일등 공신이다.

극 초반 선우부터 중후반 정환, 후반 택이에 이르기까지. 덕선은 '응답'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남자에게 설레었다. 한 때는 '지조도 없는 아이'라고 질타를 받기는 했지만 택과의 끈기 있고 아련한 사랑의 결실로 절반의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반면 설득당하지 못한 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남류'를 꾸준히 밀어왔던 시청자들이다.

혜리는 "'사실은 어남류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부문"이라면서도 "시청자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반박할 수 없다"라고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그의 '애매모호'한 대답을 이해해야만 했다. '덕선'과 '혜리'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혜리는 명석하게도, 제작진이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전했다는 단서는 달았다.

"모두를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택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됐더라도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되든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을까."

혜리는 덕선의 ‘순수함’을 강조했다. 그는 "덕선이 선우와 정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은 주변에서 '널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어리고 순수했던 친구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아, 그래? 그럼 나도 쟤가 좋아’ 하면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혜리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랬다. 정환이는 아직 덜 여문 사과 같은 덕선의 풋사랑이다.

“동룡에게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덕선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덕선은 초반부터 택을 의식하고 있었다. ‘왜 그 아이는 저렇게 춥게 입을까, 밥은 먹었을까, 또 약을 먹고 잤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을 보면 택에 대한 마음을 덕선은 의식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덕선의 감정의 흐름으로 시청자들을 완벽하게 설득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응답하라 1988'의 결말 논란에 대해 혜리는 애매하지만 어쩌면 가장 현명한 대답을 내놨다./사진=변성현 기자
'응답하라 1988'의 결말 논란에 대해 혜리는 애매하지만 어쩌면 가장 현명한 대답을 내놨다./사진=변성현 기자
덕선이 아닌 실제 혜리였더라도 택이를 선택했을까. 지구상에 남자라고는 정환, 택, 선우, 동룡뿐이라면 누구와 사랑에 빠졌을까.

혜리는 조금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쌍문동 4인방’은 시청자 입장에서 보기에 '보기 좋은 떡'이지 덕선에 입장에서 결핍투성이인 아이들이다.

“한 친구는 아무것도 못하고, 한 친구는 바둑밖에 모르고, 얘는 웃기기만 한다. 한술 더 떠 얘는 ‘성보라’(류혜영)을 좋아한다.(하하) 덕선의 입장에서 보면 극적이고 까칠한, 그리고 어딘가 결핍이많은 아이들이다. 혜리의 입장에서 보면, 글쎄... 좋은 부분만 섞을 수는 없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결혼이라도 하겠다.(하하)”

‘응팔’은 공감 가는 스토리와 함께 매력있는 신진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그들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항상 류준열, 이동휘, 고경표, 박보검에 둘러싸인 혜리의 모습을 보고 ‘부러운 근무환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혜리는 “박보검 빼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막내처럼 귀여워해줬다”라면서 화기애애했던 촬영 현장에 대해 회상에 잠겼다.

그는 “다른 분들은 예전부터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다. 혹시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촬영 전부터 대본 리딩도 하면서 자주 만났다. 본격적인 촬영 때에는 이미 친해진 상태라 즐거웠다. 스텝들이 ‘얘들아~ 그만 놀고 촬영 좀 하자’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첫 주연작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촬영 하면서 ‘잘 나올까요?’ 하며 묻곤 했는데 오빠들은 ‘야~ 우리 덕선이 잘한다, 최고야’ 하며 격려를 해줬다. 많이 배웠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혜리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시청자들도 아는 것 같다. 실제로 친하면 화면에 보이나 보다. ‘응팔’ 가족들 사이의 ‘케미’(호흡)가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즐겁고, 보람있었다.”

혜리는 '응팔'의 '덕선'이라는 값진 커리어와 함께 녹록지 않은 연기 인생을 응원해줄 든든한 지원군들을 얻은 모양이다.


▶ [인터뷰②] 혜리를 키운 건, 팔 할이 '시청자'였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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