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상사 대할 땐 이렇게…" "보고서는 이처럼…" 친절히 설명했더니 여후배는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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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의 모호한 경계…멀어지는 직장남녀
"김 차장 있어 말 못 하겠네" 술자리서 은근 '왕따'
남성 처럼 행동해야 회사생활 편해ㅠㅠ
"김 차장 있어 말 못 하겠네" 술자리서 은근 '왕따'
남성 처럼 행동해야 회사생활 편해ㅠㅠ
스스로 ‘매너 있는 남성’이라고 여기는 김 과장. 작년 하반기 공채를 통해 최근 입사한 여자 후배들에게 사회생활 요령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고서 쓰는 법, 거래처에 전화하는 법, 상사를 대하는 법 등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나에게 와서 상담하라”는 얘기도 했다.
이런 김 과장은 사내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설명충(사소한 일까지 꼬치꼬치 설명해주려는 사람을 벌레에 빗대 비하하는 말)’으로 통한다. 여직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설명을 많이 하는 김 과장이 지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이 같은 현상을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단어를 합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신조어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맨스플레인도 성(性)차별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남자들도 할 말은 많다. 많은 남성 직장인이 “도대체 직장 내에서 어떻게 말해야 여자들과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게 낫다”고 항변한다. “신입사원들의 현업 배치와 환영회가 이어지는 요즘은 남녀 간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오해로 직장 내 갈등이 고조되기 쉬운 시기”라는 게 직장인들의 얘기다.
‘잘나가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잔소리
한 중견 의료기기업체에 다니는 김 차장(38)은 회사 내 최고참 여직원이다. 회사 내에 여직원은 비서실과 재경팀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이 일부 있을 뿐 대부분은 공대 출신 남성이다.
김 차장은 1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성들의 잔소리를 듣는 데 이골이 났다. 입사 초기엔 부장과 임원들이 “네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대놓고 면박을 줄 때도 많았다. 어느 정도 연차가 되자 이번엔 “내가 차장 시절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김 차장은 요즘 5년 안팎 후배인 다른 부서 남자 과장에게까지 “아, 이건 말이죠”라며 가르침(?)을 받는다. 김 차장은 “처음에는 발끈하고 화도 내 봤지만 지금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성희롱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들도 김 차장을 괴롭힌다.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자 선배들은 “김 차장이 있어서 더 말을 못 하겠네”라며 하던 말을 멈출 때가 많다. 마치 회식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여성인 김 차장인 것처럼 구는 태도에 화가 나지만 그냥 넘길 수밖에 없다.
실력이 살길
고액자산가들에게 투자상담을 해주는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2014년 말부터 맡게 된 한 시중은행 소속 이 과장(35). 그는 일반 지점에 근무하면서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땄고, 매일같이 주요 국가의 시장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아 ‘준비된 인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남권 PB센터에 배치된 이 과장도 PB 업무를 시작한 초기엔 남자 선배들의 잔소리에 시달렸다. 이 중 대부분은 이 과장에게 특별할 게 없는 얘기들이었다. 선배들은 “한국 증시 흐름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나 미국 시장을 주시해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특별한 조언인 양 얘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쏟아지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PB센터에서 근무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이 과장이 탁월한 수익률을 올리자 고객들이 그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이 과장은 해당 PB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그가 관리하는 자산규모는 수백억원대로 불어났다. 해당 PB센터 내 상위권에 속한다.
이제 그의 동료 PB팀장들은 더 이상 이 과장에게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요즘은 오히려 동료 PB팀장들이 “이 고객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라며 이 과장의 의견을 먼저 묻는다.
상대를 안 해주는 남자들
한 대기업 해외영업부에 근무하는 여직원 김모씨(27)는 요즘 부서에서 자신을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회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기업이지만 남성 위주의 군대식 문화가 남아 있다.
그는 남자 직원들에게 “영업은 몸으로 하는 것이어서 말로 해서는 소용없다”거나 “결혼하면 퇴사할 거 아니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나를 ‘여성 직원’이 아니라 ‘동료 직원’으로 봐달라”고 항변도 해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부서장이 김씨가 하던 일을 남성 동료에게 떼어줄 때는 어깨가 축 처진다.
한 대기업의 이 부장(45)은 사내에서 실력이 뛰어난 여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여자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여성 멘토’로 강의를 한다.
이 부장은 신입사원들에게 “남성 위주의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예 남성’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해마다 반복한다. 그가 말하는 명예 남성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성을 뜻한다.
이 부장도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은 아니다. 20여년 전 신입사원 시절 한 남자 상사의 꾸지람에 눈물을 보인 이후 지나치게 배려를 받게 된 게 이 부장이 생각을 바꾼 계기다.
이 부장은 이후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성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이 부장은 “요즘엔 ‘내가 후배들에게 여성성을 버리라고 주문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자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남자도 억울하다.
최근 한 벤처기업으로 이직한 박 과장(35)은 의도치 않은 일로 구설에 올랐다. 같은 팀 여사원이 거래처에 관해 묻길래 별생각 없이 “오빠가 설명해줄게”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설명을 듣는 후배가 왠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엔 정확히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최근 다른 팀 여자 후배로부터 그 여사원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전해 듣게 됐다. 이 후배가 박 과장의 얘기를 성희롱이라고 받아들인 것.
박 과장은 “평소 ‘형이 도와줄게’란 말을 심심치 않게 쓰는데 친근함의 표현으로 여자 후배에게 오빠라는 말을 쓰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최근엔 다른 여직원에게 “너는 팀에 온 지 얼마나 됐는데 그런 것도 모르느냐”며 타박한 게 남녀차별 발언으로 탈바꿈했다.
“몇 차례 말실수로 여직원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아예 여직원들과 말을 섞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보고서 쓰는 법, 거래처에 전화하는 법, 상사를 대하는 법 등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나에게 와서 상담하라”는 얘기도 했다.
이런 김 과장은 사내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설명충(사소한 일까지 꼬치꼬치 설명해주려는 사람을 벌레에 빗대 비하하는 말)’으로 통한다. 여직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설명을 많이 하는 김 과장이 지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이 같은 현상을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단어를 합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신조어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맨스플레인도 성(性)차별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남자들도 할 말은 많다. 많은 남성 직장인이 “도대체 직장 내에서 어떻게 말해야 여자들과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게 낫다”고 항변한다. “신입사원들의 현업 배치와 환영회가 이어지는 요즘은 남녀 간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오해로 직장 내 갈등이 고조되기 쉬운 시기”라는 게 직장인들의 얘기다.
‘잘나가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잔소리
한 중견 의료기기업체에 다니는 김 차장(38)은 회사 내 최고참 여직원이다. 회사 내에 여직원은 비서실과 재경팀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이 일부 있을 뿐 대부분은 공대 출신 남성이다.
김 차장은 1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성들의 잔소리를 듣는 데 이골이 났다. 입사 초기엔 부장과 임원들이 “네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대놓고 면박을 줄 때도 많았다. 어느 정도 연차가 되자 이번엔 “내가 차장 시절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김 차장은 요즘 5년 안팎 후배인 다른 부서 남자 과장에게까지 “아, 이건 말이죠”라며 가르침(?)을 받는다. 김 차장은 “처음에는 발끈하고 화도 내 봤지만 지금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성희롱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황들도 김 차장을 괴롭힌다.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자 선배들은 “김 차장이 있어서 더 말을 못 하겠네”라며 하던 말을 멈출 때가 많다. 마치 회식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여성인 김 차장인 것처럼 구는 태도에 화가 나지만 그냥 넘길 수밖에 없다.
실력이 살길
고액자산가들에게 투자상담을 해주는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2014년 말부터 맡게 된 한 시중은행 소속 이 과장(35). 그는 일반 지점에 근무하면서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땄고, 매일같이 주요 국가의 시장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아 ‘준비된 인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남권 PB센터에 배치된 이 과장도 PB 업무를 시작한 초기엔 남자 선배들의 잔소리에 시달렸다. 이 중 대부분은 이 과장에게 특별할 게 없는 얘기들이었다. 선배들은 “한국 증시 흐름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나 미국 시장을 주시해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특별한 조언인 양 얘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쏟아지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PB센터에서 근무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이 과장이 탁월한 수익률을 올리자 고객들이 그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이 과장은 해당 PB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그가 관리하는 자산규모는 수백억원대로 불어났다. 해당 PB센터 내 상위권에 속한다.
이제 그의 동료 PB팀장들은 더 이상 이 과장에게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요즘은 오히려 동료 PB팀장들이 “이 고객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라며 이 과장의 의견을 먼저 묻는다.
상대를 안 해주는 남자들
한 대기업 해외영업부에 근무하는 여직원 김모씨(27)는 요즘 부서에서 자신을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회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기업이지만 남성 위주의 군대식 문화가 남아 있다.
그는 남자 직원들에게 “영업은 몸으로 하는 것이어서 말로 해서는 소용없다”거나 “결혼하면 퇴사할 거 아니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나를 ‘여성 직원’이 아니라 ‘동료 직원’으로 봐달라”고 항변도 해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부서장이 김씨가 하던 일을 남성 동료에게 떼어줄 때는 어깨가 축 처진다.
한 대기업의 이 부장(45)은 사내에서 실력이 뛰어난 여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여자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여성 멘토’로 강의를 한다.
이 부장은 신입사원들에게 “남성 위주의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예 남성’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해마다 반복한다. 그가 말하는 명예 남성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성을 뜻한다.
이 부장도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은 아니다. 20여년 전 신입사원 시절 한 남자 상사의 꾸지람에 눈물을 보인 이후 지나치게 배려를 받게 된 게 이 부장이 생각을 바꾼 계기다.
이 부장은 이후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성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이 부장은 “요즘엔 ‘내가 후배들에게 여성성을 버리라고 주문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자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남자도 억울하다.
최근 한 벤처기업으로 이직한 박 과장(35)은 의도치 않은 일로 구설에 올랐다. 같은 팀 여사원이 거래처에 관해 묻길래 별생각 없이 “오빠가 설명해줄게”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설명을 듣는 후배가 왠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엔 정확히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최근 다른 팀 여자 후배로부터 그 여사원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전해 듣게 됐다. 이 후배가 박 과장의 얘기를 성희롱이라고 받아들인 것.
박 과장은 “평소 ‘형이 도와줄게’란 말을 심심치 않게 쓰는데 친근함의 표현으로 여자 후배에게 오빠라는 말을 쓰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최근엔 다른 여직원에게 “너는 팀에 온 지 얼마나 됐는데 그런 것도 모르느냐”며 타박한 게 남녀차별 발언으로 탈바꿈했다.
“몇 차례 말실수로 여직원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아예 여직원들과 말을 섞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