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새해 개장 첫날인 4일 크게 요동쳤다. 유가는 오르고 아시아와 유럽 등 주요 증시는 일제히 내렸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미국 달러는 강세를 띠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하는 등 양국 간 갈등 관계가 1980년대 후반 이래 최고조에 이르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날 발표된 중국 차이신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8.2로 10개월 연속 위축세를 보인 것도 투자자들의 우려를 높였다. PMI가 50 이상이면 제조업 경기가 확장 국면, 50 이하면 위축 국면에 있음을 뜻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증시가 새해 산뜻하게 출발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코스피지수가 새해 첫 거래일인 4일 중국 증시 폭락 여파에 2%가 넘는 낙폭을 기록하자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한 직원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시세판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코스피지수가 새해 첫 거래일인 4일 중국 증시 폭락 여파에 2%가 넘는 낙폭을 기록하자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한 직원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시세판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사우디·이란 대치…유가 출렁

[요동 친 세계 금융시장] 사우디·이란 강대강 대치, 중국 제조업경기 둔화…아시아 증시 급락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개장하자마자 배럴당 38.32달러로 전거래일 대비 3.6% 뛰어올랐다.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 건물이 이란 시위대의 공격에 불타고, 사우디가 이란에 국교 단절을 통보하는 등 양국의 대치가 극에 달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릭 스푸너 CMC마케츠 수석분석가는 “당장 원유 생산에 차질은 없겠지만 혹시나 모를 불안감으로 원유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포지션을 청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태의 영향을 투자자들이 면밀히 따지기 시작하면서 상승폭은 1%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양국 갈등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 해제를 앞둔 이란이 원유 수출 물량을 하루 200만배럴로 늘릴 것에 대비해 OPEC은 내부적으로 감산을 검토해왔다. 사우디도 이란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저유가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상하이증시 ‘검은 월요일’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이날 1918.76으로 2.17%,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8450.98로 3.06% 내렸다. 상하이종합지수도 3296.26으로 6.86% 급락했다. 중국 당국이 올 들어 도입한 서킷브레이커가 이날 두 차례 발동되며 상하이증시는 오후 1시34분부터 장 마감까지 거래가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중국 제조업 PMI가 부진했고, 위안화 고시환율이 달러당 6.5032위안으로 2011년 5월 이후 최고치(위안화 가치 최저)를 기록한 것이 ‘검은 월요일’을 불러온 요인으로 보고 있다. 덩하이칭(鄧海淸) 주저우(九州)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자본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증시를 내리눌렀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작년 7월 한시적으로 시행한 ‘최대주주 주식처분 금지 조치’가 오는 8일 해제되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최대주주 주식처분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 최대 1조2000억위안 규모의 매도 물량이 증시에 쏟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콩 봉황망은 이날 중국 정부가 지분매각 금지 해제 시기를 뒤로 미룰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미국 증시도 일제히 약세를 나타냈다. 영국 FTSE100지수는 2.5% 떨어졌다.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2% 하락 출발했다.

◆원·달러 환율…작년 9월 후 최고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15원20전 급등한(원화 가치 하락) 달러당 1187원70전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9월25일(1194원70전) 이후 최고치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글로벌 증시 하락에 위험자산 투자심리도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 서킷브레이커

주가가 급등·급락할 때 주식매매를 일시 중지하는 제도로 중국은 올해 처음 도입했다. 상하이·선전증시의 대형주로 구성된 CSI300지수가 5% 이상 급등·급락하면 15분간 거래를 정지하고, 7% 이상 급등·급락하면 장 마감까지 거래를 완전 중단한다.

임근호/김동윤/김유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