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외자 이탈 진단에 오류…'달러계 자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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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인 매도 사우디가 주도
미국 금리인상 충격 부풀려선 안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금리인상 충격 부풀려선 안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다. 코스피지수 하루 평균이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웃돌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외국인 매수세까지 가세했더라면 박스권 돌파가 가능했을 것이란 얘기다. ‘연말 랠리’ ‘1월 효과’ 등으로 한국 국민 경제생활에 훈풍이 불려면 외국인 매도세가 멈춰야 한다.
외국인 매도세가 언제 진정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외국인 순매도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매도액이 3조원을 웃돈다. 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국가 자금은 오히려 유입되고 있다.
12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 이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계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외자 이탈 진단의 오류’다. 올해 국내 증시에서는 이 논리가 지배했다.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해 미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논리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등 신흥국 증시는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올 들어 지금까지 코스피지수는 6% 넘게 상승한 반면 다우존스지수는 작년 말 수준을 밑돌고 있다. 미국 국채 가격도 떨어졌다. 미 금리 인상을 앞두고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하는 달러캐리 자금은 주식,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에 집중 투자하고 부동산은 우선 투자대상이 아니다.
사우디의 매도세는 유가 하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채권국과 채무국 이론으로 사우디의 지위는 유가 수준에 따라 쉽게 변한다. 국부펀드 형태로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금융청(SAMA)의 자금원 중 원유판매대금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SAMA는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를 바탕으로 작년 6월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담당했다. 황태자 대우를 받았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이 기관은 국부펀드로 해외에 투자할 때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우선 고려한다. 미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안전자산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투자 여건이 급변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된 데다 미국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선진국 투자자산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됐다. SAMA 입장에서는 선진국 안전자산을 대체할 수 있는 ‘피난처(shelter)’가 절실히 필요했다.
한국은 피난처로 적당한 국가다. 경제 위상으로 하드웨어(GDP·수출액·시가총액·외화로 평가)는 ‘선진국’, 소프트웨어(부패·뇌물공여지수로 평가)는 ‘신흥국’으로 평가된다. 양대 투자벤치마크지수로도 파이낸셜타임스(FTSE)지수에는 선진국, 모건스탠리지수(MSCI)에는 신흥국에 속한다. 한국 주식도 선진국 안전자산을 대체할 대표주만 사들였다.
작년 7월 이후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락폭이 60%에 달한다. 원유판매대금이 주자금원인 SAMA는 증거금 부족현상인 ‘마진 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투자기관이 마진 콜을 당하면 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투자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국면으로 곧바로 전환된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세를 사우디아라비아 자금이 주도하고 업종별로는 SK텔레콤, 삼성전자, 포스코 등 대표 주식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SAMA의 자금 규모는 800조원에 달해 500조원을 막 넘어선 국민연금보다 훨씬 크다.
SAMA가 직면한 마진 콜이 한국 증시 등에 투자한 주식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없이 풀리기 위해서는 유가가 60달러는 돼야 한다. 유가 전망과 관련해 ‘20달러 폭락설’(델 피노 베네수엘라 석유장관)과 ‘130달러 급등설’(이메드 모스타크 에크스트라트 투자전략가)과 같은 극단적 시각이 나올 정도로 혼란스럽다.
단기적으로는 다음달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연차 총회에서 논의될 감산 여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방지 차원에서 원유 등 화석연료 규제, 중국 경기둔화, 핵협상이 타결된 이란의 원유수출 재개 등을 감안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다.
유가가 반등하든, 디레버리지를 통하든 마진 콜이 해결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이탈은 멈추게 된다. 분명한 것은 외국인 매도세가 미국 금리 인상 전망을 앞두고 달러계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 금리 인상 요인을 들어 내년 국내 증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거나 ‘슈퍼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외국인 매도세가 언제 진정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외국인 순매도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매도액이 3조원을 웃돈다. 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국가 자금은 오히려 유입되고 있다.
12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 이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계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외자 이탈 진단의 오류’다. 올해 국내 증시에서는 이 논리가 지배했다.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해 미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논리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등 신흥국 증시는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올 들어 지금까지 코스피지수는 6% 넘게 상승한 반면 다우존스지수는 작년 말 수준을 밑돌고 있다. 미국 국채 가격도 떨어졌다. 미 금리 인상을 앞두고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하는 달러캐리 자금은 주식,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에 집중 투자하고 부동산은 우선 투자대상이 아니다.
사우디의 매도세는 유가 하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채권국과 채무국 이론으로 사우디의 지위는 유가 수준에 따라 쉽게 변한다. 국부펀드 형태로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금융청(SAMA)의 자금원 중 원유판매대금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SAMA는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를 바탕으로 작년 6월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담당했다. 황태자 대우를 받았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이 기관은 국부펀드로 해외에 투자할 때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우선 고려한다. 미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안전자산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투자 여건이 급변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된 데다 미국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선진국 투자자산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됐다. SAMA 입장에서는 선진국 안전자산을 대체할 수 있는 ‘피난처(shelter)’가 절실히 필요했다.
한국은 피난처로 적당한 국가다. 경제 위상으로 하드웨어(GDP·수출액·시가총액·외화로 평가)는 ‘선진국’, 소프트웨어(부패·뇌물공여지수로 평가)는 ‘신흥국’으로 평가된다. 양대 투자벤치마크지수로도 파이낸셜타임스(FTSE)지수에는 선진국, 모건스탠리지수(MSCI)에는 신흥국에 속한다. 한국 주식도 선진국 안전자산을 대체할 대표주만 사들였다.
작년 7월 이후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락폭이 60%에 달한다. 원유판매대금이 주자금원인 SAMA는 증거금 부족현상인 ‘마진 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투자기관이 마진 콜을 당하면 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투자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국면으로 곧바로 전환된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세를 사우디아라비아 자금이 주도하고 업종별로는 SK텔레콤, 삼성전자, 포스코 등 대표 주식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SAMA의 자금 규모는 800조원에 달해 500조원을 막 넘어선 국민연금보다 훨씬 크다.
SAMA가 직면한 마진 콜이 한국 증시 등에 투자한 주식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없이 풀리기 위해서는 유가가 60달러는 돼야 한다. 유가 전망과 관련해 ‘20달러 폭락설’(델 피노 베네수엘라 석유장관)과 ‘130달러 급등설’(이메드 모스타크 에크스트라트 투자전략가)과 같은 극단적 시각이 나올 정도로 혼란스럽다.
단기적으로는 다음달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연차 총회에서 논의될 감산 여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방지 차원에서 원유 등 화석연료 규제, 중국 경기둔화, 핵협상이 타결된 이란의 원유수출 재개 등을 감안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다.
유가가 반등하든, 디레버리지를 통하든 마진 콜이 해결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이탈은 멈추게 된다. 분명한 것은 외국인 매도세가 미국 금리 인상 전망을 앞두고 달러계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 금리 인상 요인을 들어 내년 국내 증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거나 ‘슈퍼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