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예니체리란 소수 정예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술탄(왕)의 친위부대로 화살이나 단검, 창 등을 사용하는 기병들이었다. 병사들은 발칸반도의 식민지에서 차출된 엘리트 청소년으로 구성됐다. 창설 후 200년 동안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고 엄격한 병영생활을 고수했다. 당시 튀르크 식민지에선 자식들을 서로 예니체리에 보내려 했다. 14~16세기 튀르크의 식민지 전쟁에서 활약한 이들의 용맹담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제국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중에 튀르크 정치에 관여하면서 제국을 멸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600년 이후 14차례나 술탄의 폐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기도 했다.

예니체리 후예들의 용맹은 6·25전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차대전에서 뼈아픈 패배로 2차대전 중립을 선언했던 터키는 6·25가 터지자마자 곧바로 참전을 선언했다. 터키는 1만4936명의 터키군을 한국에 파병했다.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규모였다. 6·25 영웅 백선엽 장군이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터키군의 용맹은 남달랐다. 군우리전투나 금양장리전투 등 백병전에서 예니체리의 혼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국에서 전사한 터키군만 741명, 부상자는 2147명이나 됐다. 참전한 군인의 20% 이상이 피해를 본 것이다. 6·25 이후 터키는 한국인을 칸카르데쉬(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터키의 6·25 참전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터키군은 지금도 NATO에서 미군 다음으로 두 번째 큰 군대를 갖고 있다. 현재 터키군은 50만명이며 예비군도 4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터키의 청년들은 15개월간 국방 의무를 져야 한다. 국방예산은 182억달러로 GDP의 2.4%에 이른다.

터키 공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사건이 엊그제 발생했다. 경계 비행 중인 터키공군 F16 전투기 두 대가 시리아 접경인 남부 하타이주 야일리다으 지역에서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다. 이날 터키 측은 러시아 비행기에 5분 동안 10번이나 경고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 투르크멘족 거주 지역에 공습을 강화하고 있는데, 터키 정부는 ‘형제 민족’인 투르크멘족이 공격을 받았다며 보복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중동의 앞날은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이제 터키까지 시리아 내전의 당사자로 떠올랐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