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최고의 선물
얼마 전 한 퇴직 직원으로부터 손글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약 30년 전 은행 지점에서 필자와 같이 일했고, 15년 전 은행을 떠난 직원이었다. 편지엔 “과거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은행장이 됐단 소식을 들어 너무 반가웠고, 훌륭한 리더가 될 것으로 믿는다”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건 손글씨 편지에 배인 잉크 내음이었다. 그때 ‘아 이런 것이 진짜 선물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서로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감사의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라면서 포장 하나에도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늘 기분 좋은 선물만 있는 건 아니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 부담스러운 선물도 많다. 받는 사람을 매우 곤경에 빠뜨리는 선물도 있고, 주는 사람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억지 선물도 있다. 주로 값비싼 선물이 이런 경우가 많다.

경조사 조의금이나 축의금에도 슬쩍 고민이 생긴다. 봉투를 들고 현장에 들어서기 전, 잠깐 봉투 속 금액의 적정성에 대해 돌이켜보기도 한다. 모두 선물을 받는 사람 편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물을 받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본인과의 친밀도 등 상대방에게 맞는 적당한 수준의 선물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선물은 정성을 담아 자신의 분수에 맞게 마음을 전하면 된다. 결혼식장에선 노래도 감동적인 선물이 되고, 결혼 적령기의 청춘에게는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이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게 해주는 강력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은행의 전임 외국인 행장을 환송하는 조촐한 파티가 있었다. 물론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선물 증정 순서도 있었다. 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나 외국인의 흥미를 끄는 커다란 도자기가 나올 법도 한데, 그가 직원들에게 받은 선물은 마음을 담아 직접 부른 노래 한 곡과 이별의 시 낭송이었다. 전임 행장도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까지 받았던 것 중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필자 역시 퇴직 직원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배인 잉크 내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 같다. “모바일 청첩장까지 유행하는 이 시대에 뭔 손글씨 타령이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정성이 담긴 손편지가 주는 가치는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글씨가 악필이면 어떠랴.

박종복 < SC은행장 jongbok.park@s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