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 전에"…자금 조달 서두르는 기업들
기업들이 연말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다음달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경우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7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13일과 16일 이틀 동안 8개사가 모두 1조15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공시했다. CJ CGV(500억원), LG이노텍(1000억원), SK루브리컨츠(1500억원), SK하이닉스(2500억원), 롯데제과(1500억원), 연합자산관리(2500억원), 한화테크윈(1000억원), 현대산업개발(1000억원) 등이다. 이들 기업은 오는 25일부터 30일 사이에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회사채 발행 계획이 단기간에 불어나면서 이달 발행 예정 금액은 최소 2조9000억원으로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발행금액(2조6900억원)도 뛰어넘는 규모다. 11월 회사채 발행금액이 10월을 넘어선 것은 2010년 이후 5년 만이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연말이 가까워지면 회사채 발행 일정을 이듬해로 미룬다. 회계 장부를 일찍 마감하는 금융회사가 많아 회사채 수요처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회사채발행 담당 임원은 “미국의 금리인상 전에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이 서둘러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며 “회사채 매수세가 부진한 만큼 다소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지만 내년 이후 자금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를 더 우려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들은 대부분 보유 현금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채 발행을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만 4조원 넘게 보유한 SK하이닉스는 회사채 발행 대금으로 반도체 원자재인 웨이퍼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윤활유를 생산하는 SK루브리컨츠도 원자재 구매대금 용도로 자금조달 목적을 기재했다. 연합자산관리와 SKC, 한화테크윈은 단기차입금이나 은행 대출을 상환해 차입금 평균만기를 늘리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차입금 만기의 장기화는 금융위기 시에도 재무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가파르게 하락해온 국내 채권금리는 지난달부터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9월 말 연 1.5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뒤 최근 연 1.75%로 0.19%포인트 올랐다. 미국 고용지표 호조로 다음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를 이끌면서 신흥국 채권 등 자산 가격 약세를 자극할 수 있다. 채권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회사채 금리는 국고채 금리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국내 기업의 실적 부진에 따른 자금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다. AA 신용등급 회사채 금리는 연 2.17%로 9월 말 이후 0.22%포인트 상승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