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황정음, 서른 둘 여배우의 담대한 연기공식 (인터뷰)
황정음 김용준 /사진=변성현 기자
황정음 김용준 /사진=변성현 기자
황정음 '그녀는 예뻤다' 종영 인터뷰

"결말 논란요? 저는 연기만 열심히 해요. 작가, 감독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저는 제가 할 몫이 있어요. '이런 결말 아니지 않아?', '주인공인데 비중이 이거 밖에 안돼?'라는 둥 대본이 이렇고 저렇고 신경을 쓰면 작품이 산으로 가요. 그런 생각할 시간에 작품에 해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연기하는 거죠."

1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진행된 MBC '그녀는 예뻤다' 종영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황정음은 살인적인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막 끝내고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은 드라마 전체를 오롯이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물 사이를 넘나들며 '물이 올랐다'는 평을 받았다. 매회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인 황정음은 알고 보니 촬영 중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다.

"촬영하는 2개월 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밖에 못 잤다. 제정신으로 연기한 적이 없을 정도다. 매일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방송을 보니 혜진이가 너무 사랑스럽더라. '언제 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음은 한 자릿수의 첫 방송 시청률(4.8%)을 17.7%까지 끌어올리며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진면목 또한 발휘했다. 야구 중계방송으로 '그녀는 예뻤다'가 결방되자 시청자들의 집단 항의를 벌이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황정음은 드라마의 인기를 예감했을까.

"솔직히 시청률에 대해 1%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지붕뚫고 하이킥'을 얼마나 행복하게 촬영했는지 기억하고 있었고, 조성희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또 이번 작품을 통해 입봉하게 된 정대윤 PD의 열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잘 될 줄 알았다. 조 작가는 첫방 시청률에 '펑펑' 울었다고 했지만 나는 시청률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신이 나 더 열심히 해야지 싶었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은 취업 준비생에서 패션 매거진 ‘모스트’ 인턴사원으로 열연하며 2030세대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단면을 현실감 있게 드러냈다. 어린 시절 갑자기 기운 집안에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녀의 모습은 뽀글머리 주근깨 소녀 김혜진 이었다.

“처음 시안을 봤을 때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폭탄머리에 ‘후까시(볼륨)’ 넣어가지고 이게 맞나 싶었다. 여자 배우는 예뻐야 하는데 시청자들이 내 얼굴을 보고 채널을 돌리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혼자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나의 못생김을 보고 채널을 돌릴 수 없게 하는 것을 연구하게 됐다. 못생겨도 행동은 자신감 있고 매력 있게 보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준희라는 예쁜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황정음은 모든 공을 스텝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돌렸다.

"작품은 절대적으로 한 명만 잘해서 되는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 박서준, 고준희, 최시원... 특히 황석정, 신동미 선배부터 아역들까지 각자 자리에서 한 명도 어긋남 없이 맡은 역할을 잘 해줬다. 배우들끼리 얘기를 했다. 감독이 캐스팅을 너무 잘 해주셔서 '쑥쑥' 진행되는 것 같다고."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사진=변성현 기자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사진=변성현 기자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은 황정음이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캐릭터다.

"항상 나는 '이번 해에 일 안 해'라고 습관적으로 말한다. 항상 쉬고 싶다. (웃음) 이번 작품은 소속사 대표가 '하라고'해서 했다. 조 작가와 '하이킥'도 했었고. '하이킥' 이후로 가벼운 작품은 하지 않으려고 의도했다.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대본이 정말 재밌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 볼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황정음은 2002년 걸그룹 슈가로 데뷔해 2005년부터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연기는 '지붕뚫고 하이킥(200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연기 전업 후 연기력 논란을 딛고 일어선 작품이기도 하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은 특유의 발랄한 캐릭터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사실 가수 활동하다 처음 연기 시작할 때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오디션 보라고 하면 가고, 욕심도 없고 그랬다. '하이킥'을 만나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완벽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연기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완전 딴 사람이 됐다. 스텝들이 지각하는 것도 주의를 줄 정도로 말이다."

연기가 '어느 날 갑자기 늘었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황정음은 아직도 연기 선생님이 있다.

"'비밀' 끝나고부터 함께하는 연기 선생님이 있다. 연기를 배운다기 보다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대본을 완벽히 이해 못하면 한 발도 못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연습을 많이 하면서 고친다. 혜진이의 독특한 말투도 대본 리딩 때 작가이 흉내 내시는 것을 보고, '황정음'화 시켰다."

황정음은 드라마 '자이언트', '내 마음이 들리니', '골든타임', '비밀', '킬 미,힐 미', '그녀는 예뻤다'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믿고 보는 황정음'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됐다. 이에 대한 부담감을 없을까. 황정음은 '믿보황'이라는 말이 나오자 웃음이 터졌다.

"생각 안 하려고 한다. 사람이 잘 될 때도 있고 못 될 때도 있다. 단지 대중은 항상 신선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제자리에 멈춰있지 않고 항상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청률, 인기와 같은 것들은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올해 서른 둘, 황정음은 해외 진출을 욕심내고 있다.

"'비밀' 끝나고 욕심을 많이 부렸다. 욕심이 아무리 많아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등바등하게 연기하지 않아도 더 좋은 기회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찾아오는 것 같다. 지금을 행복하게 즐기기로 했다. 사실 2016년 점을 봤는데 해외 운이 좋다고 한다. 한국에서 원 없이 다작도 했고, 해외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웃음)"


황정음/사진=변성현 기자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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