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빵·화장품 팔아 얼마나 벌겠어?…편견 깬 'R&D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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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지도 바꾸는 '전문가형 기업인'
임성기·허영인·서경배 회장의 '집중과 집념'
임성기, 신약 개발에 15년간 9000억…적자나도 안줄여
허영인, 업계 첫 식품연구소…한국빵 프랑스에 역수출
서경배, 아시안 뷰티 연구소 세워 15개 도시 날씨까지 분석
임성기·허영인·서경배 회장의 '집중과 집념'
임성기, 신약 개발에 15년간 9000억…적자나도 안줄여
허영인, 업계 첫 식품연구소…한국빵 프랑스에 역수출
서경배, 아시안 뷰티 연구소 세워 15개 도시 날씨까지 분석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인 7조5000억원의 신약 기술을 수출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해외사업에서 연평균 50%대 성장률을 올리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바게트의 본고장 프랑스에 한국 빵을 역수출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스타 경영인’의 특징은 ‘전문가형 기업인’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들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연구개발(R&D)에 돈을 아끼지 않고, 불모지라도 해외시장에 과감히 진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성공하는 기업 유형이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는 ‘선단식’에서 선택과 집중의 ‘한우물’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력품목 택해 R&D에 통 큰 투자
SPC와 아모레퍼시픽은 ‘빵’과 ‘화장품’에 전념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빵이나 화장품 팔아 얼마나 벌겠느냐”는 세간의 편견을 통쾌하게 깬 것이다. 1990년대 제빵업계에서는 삼립식품과 샤니의 1위 경쟁이 치열했다. 고(故) 허창성 SPC그룹 창업주가 세운 두 회사는 허영선 전 회장과 허영인 회장이 각각 물려받았다. 리조트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한 삼립식품은 부실이 쌓여가다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다. 빵에 집중한 샤니가 1위를 차지했고, 모기업인 삼립식품을 인수해 SPC그룹으로 변신했다.
주력품목이 뚜렷한 만큼 R&D에는 ‘통 크게’ 투자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의 20%인 1525억원을 R&D에 쏟아부었다. 최근 15년간 신약 개발에 투자한 돈은 9000억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매출 감소와 적자에 시달리던 2010~2011년에도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비는 오히려 늘렸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부터 중국 여성 5200명의 피부 특성을 연구한 데 이어 올 들어 ‘아시안 뷰티 연구소’를 세워 아시아 15개 도시를 기온, 강수량 등에 따라 분석하고 있다. SPC 역시 1983년 설립한 제빵업계 첫 식품연구소가 ‘R&D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품질관리는 깐깐하게
한미약품의 임 회장은 임상시험 자료의 주요 수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어 R&D 회의 때마다 임직원들을 바짝 긴장하게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서 회장은 스킨·로션부터 립스틱에 이르기까지 출시를 앞둔 모든 화장품을 직접 써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SPC의 허 회장은 주머니 속에 온도계를 넣고 다니다가 매장 내 밀가루 반죽과 제빵실 온도를 잰다. “회사는 수백만 개의 빵을 만들지만 고객은 단 한 개의 빵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빵의 품질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업의 본질’을 경영자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만큼 해외시장에도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내년에는 한국 화장품 기업의 불모지인 중동과 남미에 진출하기로 했다. 서 회장은 “인수합병(M&A)이라는 쉬운 방법도 있지만, 힘이 들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상품을 넘어 예술에 가까운 ‘명품’을 만들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표현이다.
SPC가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 연 ‘파리바게뜨 샤틀레점’에서는 매일 700개가 넘는 바게트가 판매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올 들어 수출계약을 맺은 사노피, 릴리, 베링거인겔하임은 각각 세계 4위, 12위, 15위의 정상급 제약 회사다.
◆기업인像이 달라진다
한국의 기업인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60~1970년대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창업주들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집념과 도전 정신이 돋보였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꼬박 9년을 투자해 64K D램이라는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무런 기반 없이 자동차 조선 등 핵심 산업을 일으켰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자주 언급했던 “이봐, 해봤어?”는 그 시대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록으로 꼽힌다.
벤처 열풍이 불었던 1990년대 말에는 창의력이 뛰어난 기업인들이 활약했다.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의장,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 등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주목받았다. 최근 한미약품, 아모레퍼시픽, SPC 등의 사례가 주목받으면서 “전문성을 앞세운 히든챔피언형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재계와 증시에서 나오고 있다.
임현우/강진규/김형호/서욱진 기자 tardis@hankyung.com
이들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연구개발(R&D)에 돈을 아끼지 않고, 불모지라도 해외시장에 과감히 진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성공하는 기업 유형이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는 ‘선단식’에서 선택과 집중의 ‘한우물’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력품목 택해 R&D에 통 큰 투자
SPC와 아모레퍼시픽은 ‘빵’과 ‘화장품’에 전념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빵이나 화장품 팔아 얼마나 벌겠느냐”는 세간의 편견을 통쾌하게 깬 것이다. 1990년대 제빵업계에서는 삼립식품과 샤니의 1위 경쟁이 치열했다. 고(故) 허창성 SPC그룹 창업주가 세운 두 회사는 허영선 전 회장과 허영인 회장이 각각 물려받았다. 리조트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한 삼립식품은 부실이 쌓여가다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다. 빵에 집중한 샤니가 1위를 차지했고, 모기업인 삼립식품을 인수해 SPC그룹으로 변신했다.
주력품목이 뚜렷한 만큼 R&D에는 ‘통 크게’ 투자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의 20%인 1525억원을 R&D에 쏟아부었다. 최근 15년간 신약 개발에 투자한 돈은 9000억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매출 감소와 적자에 시달리던 2010~2011년에도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비는 오히려 늘렸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부터 중국 여성 5200명의 피부 특성을 연구한 데 이어 올 들어 ‘아시안 뷰티 연구소’를 세워 아시아 15개 도시를 기온, 강수량 등에 따라 분석하고 있다. SPC 역시 1983년 설립한 제빵업계 첫 식품연구소가 ‘R&D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품질관리는 깐깐하게
한미약품의 임 회장은 임상시험 자료의 주요 수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어 R&D 회의 때마다 임직원들을 바짝 긴장하게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서 회장은 스킨·로션부터 립스틱에 이르기까지 출시를 앞둔 모든 화장품을 직접 써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SPC의 허 회장은 주머니 속에 온도계를 넣고 다니다가 매장 내 밀가루 반죽과 제빵실 온도를 잰다. “회사는 수백만 개의 빵을 만들지만 고객은 단 한 개의 빵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빵의 품질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업의 본질’을 경영자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만큼 해외시장에도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내년에는 한국 화장품 기업의 불모지인 중동과 남미에 진출하기로 했다. 서 회장은 “인수합병(M&A)이라는 쉬운 방법도 있지만, 힘이 들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상품을 넘어 예술에 가까운 ‘명품’을 만들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표현이다.
SPC가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 연 ‘파리바게뜨 샤틀레점’에서는 매일 700개가 넘는 바게트가 판매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올 들어 수출계약을 맺은 사노피, 릴리, 베링거인겔하임은 각각 세계 4위, 12위, 15위의 정상급 제약 회사다.
◆기업인像이 달라진다
한국의 기업인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60~1970년대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창업주들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집념과 도전 정신이 돋보였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꼬박 9년을 투자해 64K D램이라는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무런 기반 없이 자동차 조선 등 핵심 산업을 일으켰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자주 언급했던 “이봐, 해봤어?”는 그 시대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록으로 꼽힌다.
벤처 열풍이 불었던 1990년대 말에는 창의력이 뛰어난 기업인들이 활약했다.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의장,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 등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주목받았다. 최근 한미약품, 아모레퍼시픽, SPC 등의 사례가 주목받으면서 “전문성을 앞세운 히든챔피언형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재계와 증시에서 나오고 있다.
임현우/강진규/김형호/서욱진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