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아시아나항공 등 후원과 현지인 도움으로 대성공
지난 2일부터 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열리고 있는 제10회 런던 한국영화제의 열기가 뜨겁다. 상영작 중 상당수의 입장권이 매진됐다. 영화제에 참가한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영국인이다. 개막식에는 클레어 필먼 영국 문화부 차관이 참석해 “런던 한국영화제가 지난 10년간 성장한 것은 영국 팬들이 창조적인 영화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보여준다. 영화와 방송산업의 창조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영국과 한국은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축하했다. ‘영화 한류’의 힘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주요 상영작 입장권 매진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축제에는 윤제균 감독과 배우 황정민 문소리 등 16명이 초청됐고 5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8일 현재 ‘국제시장’ ‘도둑들’ ‘베테랑’ ‘명량’ 등 역대 흥행 1~4위 한국 영화 외에도 독립영화 ‘필름시대사랑’ ‘한여름의 판타지아’ 등의 입장권이 동났다.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은 실망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10주년을 맞아 주영 한국문화원이 현지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꼽혔다. ‘도둑들’(2위) ‘아저씨’(3위)가 뒤를 이었다. 이들 영화를 포함한 주요 작품 상영 외에 감독과의 대화, 한국영화산업 성장 스토리 강연, ‘영화와 역사:한국 사례’ 등을 주제로 한 포럼도 열렸다.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과 배우 황정민도 지난 3일 현지 관객을 만났다. 한 영국인이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느냐”고 묻자 황정민은 “주인공 덕수는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캐릭터여서 친숙한 편”이라며 “한국에서 장남이란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영화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를 담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과 팬들은 극장에서 1차 대화를 나눈 뒤 한국문화원으로 자리를 옮겨 밤늦도록 2차 대화 시간을 가졌다. 자리를 함께한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씨는 “한국 영화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에 영국인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현지인과 기업들이 적극 후원
주영 한국문화원이 20만파운드(약 3억500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2주간에 걸친 대규모 영화제를 치를 수 있는 비결은 기업과 현지인의 후원이다. 자원봉사자 25명 중 20명이 비(非)한국인이다. 영국 영화학도가 절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일반인이다. 모두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다. 히드로공항 직원인 코델리아 스키너 씨(22)는 “영화 ‘추격자’를 보고 한국 영화 팬이 됐다”며 “축제 기간에 설문조사하는 일을 맡았는데 힘은 들지만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약 4500만원어치 항공권을 협찬했고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석 대를 의전 차량으로 제공했다. 6성급의 영국 코린시아호텔은 1400만원 상당의 숙박을 지원했다. 오데온, 픽처하우스, 리젠트스트리트 등 세 개 극장은 선금을 받지 않고 수익 배분 방식으로 상영관을 협찬했다. 주최 측은 영화학교인 킹스칼리지와 영화제 메인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 고전영화 전문가인 마크 모리스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는 등 현지인과 영화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런던=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