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에도 자제령을 내렸다.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일본, 네덜란드 역시 자국민에게 여행자제를 권고했다. 러시아인들은 이집트 여행을 취소했고, 독일 항공사는 이 지역 운항을 멈췄다.
‘여행자제’는 외교부의 4단계 여행경보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가장 낮은 수위가 ‘여행유의’(남색경보)이고, 그 다음 ‘여행자제’(황색경보) ‘철수권고’(적색경보) ‘여행금지’(흑색경보)로 이어진다. 2단계부터는 글자 그대로 여행을 자제하는 게 좋다. 3단계 철수권고 지역은 리비아, 파키스탄, 남수단, 니제르 등 정정이 매우 불안한 국가들이다.
가장 위험한 4단계 여행금지국가는 전쟁과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이라크, 예멘, 시리아 등이다. 정부의 허가 없이 이들 나라에 들어가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개인의 신변 안전은 물론이고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여행객이 많지 않아 문제다. 이번 자제령에도 불구하고 몰디브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2012년 몰디브 자제령 때에도 예약 취소가 거의 없었다. 이른바 한국적 저돌성 때문인지, 위험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 탓인지 모를 일이다. ‘등반금지’ 팻말을 보면 일부러 그쪽 길로 들어서고, 촌각을 다투는 항공기 사고에서도 승무원 안내와는 반대로 가방을 챙기며, 안전수칙을 강조하면 되레 화를 내는 한국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과 웬만한 규칙쯤은 어겨도 좋다고 믿는 한국인의 유별난 유전자는 고질적이다. 외국인들도 ‘정말 말 안 듣는 한국’의 저(低)신뢰사회(low trust society)가 국가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법적인 문제부터 회계 감사, 안전 기준, 사회 시스템이 다 그렇다.
갑작스런 사태에 신혼여행객의 마음이야 오죽 불안할까 싶지만, 우리 후손들은 무모한 용기(?) 때문에 자신을 위태롭게 한다는 소릴 더 이상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워서 해보는 소리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