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턴의 불평등 원인·처방, 피케티와 다르다"
"세계화·기술 진보가 불평등 키워…제도적 불공정 해소해야"
VS
"부의 세습이 불평등 심화시켜…부자에 많은 세금 부과해야
‘조심스러운 낙관론자’ 디턴
시장경제제도연구소가 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앵거스 디턴 《위대한 탈출》의 의의와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 토론회는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집중됐다. 디턴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조 교수는 기조발표에서 ‘디턴의 성장사다리론’에 긴 해석을 달았다. 《위대한 탈출》 5장에서 디턴은 미국의 전체 빈곤율 추이를 살펴봤다. 빈곤율은 1959년 22%에서 1973년 11%로 줄었다가 2010년엔 15%로 다시 높아졌다. 1인당 소득은 1973년부터 2010년까지 60% 늘었지만, 이 같은 성장이 빈곤율을 줄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일부에선 경제 성장이 빈곤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불평등 긍정성 체계적으로 언급”
조 교수는 “하지만 디턴은 빈곤선이 아주 오래전에 그어진 점을 비판했다”며 “인간의 ‘웰빙’을 결정하는 질적 요인도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에 살고 교육을 받으며 건강을 누리는 등 돈 이외의 다른 요소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성장으로 세계가 보건, 기대수명, 교육수준 등에서 의미있는 진보를 이뤘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것이 위대한 탈출의 핵심 명제”라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디턴이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불평등이 양날의 칼’이라고 언급한 데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불평등은 사람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일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순기능이 있다. 조 교수는 “디턴은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을 체계적으로 언급한 첫 번째 학자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디턴도 불평등의 부작용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디턴은 그의 책 5장에서 피케티가 2003년에 한 소득불평등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이 점 때문에 일부에선 디턴과 피케티가 불평등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 교수는 “그렇다고 디턴이 피케티의 사고에 동의했거나 보완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며 두 사람의 불평등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해법은 전혀 다르다고 역설했다.
“디턴-피케티 보완관계 아니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면서 부의 불평등이 심해진다고 봤다. 이와 달리 디턴은 상위 소득의 점유율뿐 아니라 구성원과 유형이 바뀌었다고 봤다. 세계화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창의적인 사람에게 엄청난 부가 돌아가게 됐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다.
토론회에서 불평등의 해결책은 정치적 로비에 기댄 ‘불공정 경쟁’을 해결하는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학과 교수는 “디턴은 한 나라의 불평등이 성장을 포기하고 분배에 집중함으로써 해결된다고 보진 않는다”며 “심지어 원조가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조차 반대했다”고 말했다.
제도 불공정 하면 ‘나쁜 불평등’
토론자들은 《위대한 탈출》을 둘러싼 논의가 단편적이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연가스가 생긴다고 자동차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며 “일부에서 디턴을 불평등 옹호론자처럼 단순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연구원장은 “잘사는 나라를 정의할 때 경제성장, 불평등, 절대빈곤층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빈곤 해결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이 빈곤층의 경제적 희생으로 생겼다는 피케티식의 ‘배 아픔의 정서’는 우리를 다시 빈곤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분명한 사실은 지난 100년 동안 상위 1%로의 ‘극적인 집중’과 ‘생활 수준의 민주화’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이라며 “전자보다 후자에 방점을 찍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경제위기는 불평등을 극적으로 심화시킨다”며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성장 페달을 밟는 것보다 더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