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김춘수 등 강사로 참여
지난 17년간 학교 서점, 병원 강의실을 전전해온 콜로퀴엄은 이미 1년6개월 전에 했어야 할 15주년 세미나를 이날에야 열게 됐다. 형편이 안 돼 연기를 거듭했던 탓이다. 박미영 콜로퀴엄 사무국장(시인)이 모임의 연혁을 읽어 내려가자 박재열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적은 강의료에도 흔쾌히 ‘최고의 강의’를 해준 500여명의 강사와 수강생들이 떠올라서였다.
콜로퀴엄은 1999년 3월 박 교수와 박 시인 등 문인과 대학교수 등 27명이 설립했다. 지난달 19일 허경 전 고려대 교수의 ‘르네 지라르’ 강의로 500회를 넘어섰다. 역사로 보면 서울의 유명한 인문모임인 ‘수유너머’보다 길다. 박 교수는 “당장 돈벌이가 되거나 명예가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진지하게 들으러 오는 수강생이 끊이지 않아 17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 번의 중단 위기 때마다 콜로퀴엄을 살린 이는 수강생과 독지가들이었다. 강의를 즐겨듣던 주물공장 사장과 외국기업 지사장이 몇백만원을 기부했다. 몇몇 화가는 자신들의 그림을 내놓기도 했다.
설립 후 4년가량은 3개월 과정의 문학강좌인 ‘작가대학’을 무료로 운영하다가 2003년부터 매주 월요일 유료 특강으로 바꿨다. 1회 수강료가 2만원인데 지금까지 수강한 사람이 4만명을 넘는다. 작가 박완서, 김춘수, 박상륭, 오정희 씨를 비롯해 정점식 교수(미술), 봉준호 감독(영화), 김화영·황현산 교수(문학)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강사로 다녀갔다. 수강생도 작가와 교수, 의사, 기업인, 변호사 등 전문직과 직장인, 교사, 주부, 버스기사, 대학생,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하다. 온라인 강의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박 시인은 “직접 발품을 팔아 듣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근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콜로퀴엄의 인문학 운동은 각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초·중·고교 교사 직무연수를 통해 인문운동이 대구교육청의 특화교육으로 확산됐고, 대구오페라축제 때에도 문학과 오페라 강좌를 같이 진행했다. 수강생인 박성환 성서산업단지 부이사장은 산업단지에서 2년째 인문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박 교수는 “사회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지만 정작 대학의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다”며 “대학생들에게 취업이 절박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자기 학문에 더 충실하는 것이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