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김
얕은 불에 살짝 구운 김은 싱그러운 바다향을 풍긴다. 은은한 불맛을 머금은 그 고소한 맛. 가을볕에 말린 국화잎처럼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면서 해조류 특유의 미끈한 풍미까지 갖췄다. 그 위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밥을 한 숟가락 얹고 깨를 섞은 참기름 간장을 발라 싸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요즘에는 기름을 바르고 소금 쳐서 구워낸 조미김이 많지만, 김 주산지인 남쪽 바닷가에서는 잔불에 구워 먹는 생김을 더 즐겼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양념장에 섞어서 찍어 먹거나 소스처럼 발라 먹었다. 조미와 포장 기술이 좋아지면서 해바라기유와 올리브유 등 바르는 기름 종류가 다양해졌다. 밥때뿐만 아니라 간식과 안주용으로 김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시장도 넓어졌다.

김은 수출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2010년 1억달러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2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때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김을 싹쓸이해 가더니 최근에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다. 미국이 수출량의 30%를 차지하고 그 뒤를 일본(16.8%), 태국(13.7%), 중국(11.2%)이 잇는다. 수출 대상은 유럽 각국을 비롯해 90여개국에 이른다.

김은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과 섬유소, 비타민 A와 C, 필수아미노산, 카로틴 등이 풍부한 자연 건강식이다. 특히 갑상샘 호르몬 균형에 필요한 요오드가 많이 들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웰빙 간식으로 인기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이후 출시된 김 스낵만 미국에서 40여종, 유럽에서 90여종이나 된다.

김은 한국, 일본, 중국 연안의 암초에서 자란다. 그 중 한국산이 상품으로 꼽힌다. 양식은 17세기부터 전남 장흥 사람들이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간식과 안주 외에 삼각김밥, 도시락, 초밥 등의 부재료로 많이 쓴다. 김 가루를 다른 조미료와 섞어 밥에 뿌려 먹는 후리가케도 인기다.

미국 사람들은 김을 과자처럼 대한다. 여러 가지 맛을 첨가하거나 아몬드를 넣는 등의 방식으로 김 스낵을 계속 개발한다. 지난해 전남 완도에서 열린 해조류박람회 때는 월스트리트저널이 르포기사를 실으면서 한국 김을 ‘마법 같은 음식’이라고 극찬했다. 골프스타 최경주도 완도에서 해조류를 공수해 먹는다고 전했다.

갈수록 건강에 신경을 쓰는 서구 사람들이 몸에 좋고 영양소도 풍부한 한국 김을 제대로 알아본다니 반갑다. 수출 시장이 일본 일변도에서 미국 중국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수요층이 두터워지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한국 김의 세계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