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니는 해도 삼성은 못하는 은행업
얼마 전 일본 금융잡지인 다이아몬드 부편집장을 만났다. 한국의 주요 경제 이슈와 산업, 금융 현황을 취재하러 서울에 출장 온 그는 한국에서의 첫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앞두고 궁금한 게 많다며 만나자는 요청을 해왔다.

기자가 얼마 전 일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취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그는 얼굴을 보자마자 “삼성이 앞으로 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이냐”를 계속 물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곧 질문한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일본은 15년 전인 2000년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금지한 은행-산업 분리 규제를 없앴고, 그 결과 소니가 소니뱅크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삼성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자업에서 소니를 넘어선 경험이 있는 삼성이 만약 은행업에 뛰어들 움직임이 있다면 일본에서도 큰 뉴스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달 초 일본 도쿄 현지에서 한국의 이마트라 할 수 있는 이온그룹이 만든 이온뱅크의 오프라인 점포를 찾았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내부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제지했다. “한국에서 온 것 같은데 본사와 상의한 뒤 사진 촬영을 해도 될지 말해주겠다”던 그는 30분 남짓 후 예상대로 “사진 촬영은 안된다”고 했다.

한 여직원이 거의 무릎을 꿇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다가오더니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을 한다는데 혹시 일본에 진출하면 어떡하냐는 게 본사의 우려”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세 개 컨소시엄 중 한두 곳에 연말까지 예비인가를 내줄 방침이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해 보려는 은행법 개정안은 여야 대립으로 올해 안에 통과될지 미지수다. 한국도 일본처럼 삼성, 이마트 등 대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대해선 금융위조차 ‘안 될 일’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일본이 느끼는 두려움을 우리 스스로 기우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박동휘 금융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