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2015] T-50 시리즈 통해 확보한 기술력으로 2025년까지 차기 한국형 전투기 개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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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개발의 역사
미국 정부가 이전 거부했던 체계통합기술 자체 획득
정부 부처·기업·대학 역량 결집
미국 정부가 이전 거부했던 체계통합기술 자체 획득
정부 부처·기업·대학 역량 결집
“몸이 아파도 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T-50은 우리의 젊은 날을 일 중독자로 만들었던 이상한 물건이었다.”
T-50 고등훈련기를 개발한 신동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항전체계팀 수석의 회고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한국은 2006년 세계 12번째 초음속 항공기 개발국가가 됐다. 2011년에는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T-50은 초음속 항공기 개발경험이 전무했던 1992년 2단계 차세대 훈련기사업(KTX-2)으로 탐색개발을 시작한 뒤 각종 어려움을 이겨내고 개발했다. 양산 초기만 해도 ‘핵심기술은 모두 해외에 의존한, 껍데기만 국산인 항공기’, ‘수출은 불가능한 국내용 항공기’라는 비야냥을 받았지만 2011년 이후 현재까지 4개국에 56대, 약 3조원어치를 수출하며 외화벌이의 주역이 됐다.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일자리도 만들었다.
항공기 독자 개발 능력의 중요성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돕기 위해 이란에 판매했던 F-14 전투기의 후속 지원을 중단했다. 수리부속이 부족해지자 이란은 전투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능력이 없거나 후속지원이 끊긴다면 아무리 좋은 전투기라도 고철 신세를 면할 수 없음이 확인된 사례다. T-50 사업은 항공기 독자 개발능력 확보와 국내 항공산업 육성이란 목표로 시작됐다. 출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고등훈련기를 개발할 필요성이 없으며 그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종전처럼 해외에서 바로 사들여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숱한 논란 끝에 F-16 전투기를 기술도입으로 생산하는 한국전투기사업의 절충교역 일환으로 해외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게 되면서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 사업의 탐색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T-50이 탄생할 때까지 KAI 엔지니어들에게 휴일은 없었다. T-50이 애인이었고 개발현장이 휴가지였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 관리체계(PDM)를 활용한 동시공학적인 최첨단 디지털 개발기법을 적용하고 컴퓨터 목업(COMOK=실물크기의 모형)을 활용, 구조물을 점검하며 개발기간을 줄였다. 공군과 록히드 마틴 등의 자문 덕분에 우수한 기동성을 갖춘 데다 첨단장비를 채택한 T-50을 개발할 수 있었다.
초음속을 선택한 공군의 결단
T-50은 1990년 소요제기 단계에서 훈련기와 공격기의 두 가지 용도가 제시됐다. 탐색개발 단계에선 훈련용 아음속이냐 공격용 초음속이냐가 최대 이슈였다. 공군은 기술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초음속을 선택했다. 영국의 고등훈련기인 호크가 경공격기로 성능개량을 추진했지만 아음속 항공기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장 개척에 실패한 것을 감안했다. 2000년 이후 공군은 노후화된 F-5 전투기 교체방안으로 T-50을 모체로 한 전투기 소요를 제기했다. T-50의 성능개량을 통해 FA-50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KAI는 T-50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항공기 통합 및 시험검증기술을 바탕으로 무장투하 정확도 검증과 잔여무장시험, 공대공·공대지 미사일 발사시험 등을 5년간 순조롭게 진행했다. FA-50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려면 T-50에 없던 신규 레이더, 생존장비, 스마트무장 통합이 이뤄져야 했다. KAI는 해외 기술 지원 속에 주도적으로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FA-50에 장착된 레이더는 기술발전에 따라 T-50 체계개발 당시 장착한 것보다 성능이 좋은 것으로 교체됐다. KAI는 FA-50 레이더를 TA-50 전술입문기에 붙이기로 한 뒤 장착작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엔지니어들은 3년여 동안 레이더업체와 협력해 레이더를 운용하기 위한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다.
FA-50은 공중 전투기동, 대지 및 공중 사격, 공중요격, 저고도 항법 등의 전술능력과 고성능 비행훈련을 교육할 수 있는 항공기다. KAI는 FA-50 개발을 마친 뒤 정비 임무도 맡았다.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 개선뿐만 아니라 레이더 소프트웨어 오류도 발견, 담당 업체에 개선을 요구했다. 전투기의 핵심인 레이더와 센서 등 임무장비와 미사일, 정밀유도폭탄 등 무장통합기술까지 확보, 2014년 10월 FA-50의 전력화를 마쳤다.
‘발등의 불’ KF-X, 차질없이 개발해야
KAI는 T-50과 FA-50을 통해 전투기 개발기술의 90% 이상을 확보했다. 정부는 미국 정부가 끝내 이전을 거부한 네 가지 체계통합기술을 자체적으로 획득, 한국형 전투기(KF-X)를 예정대로 2025년까지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KF-X 시제기의 초도비행에 발맞춰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의 시험개발 시한을 2021년 12월 말로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기기로 했다.
T-50 시리즈의 성공신화를 KF-X에 이어가는 것은 공군의 전력 강화는 물론 한국 항공산업의 도약을 위한 과제다. 범국가적 기술역량 결집을 위해 정부 부처, 정부출연 연구기관, 기업과 대학 간에 역할을 효율적으로 나누고 해외 업체 및 공동개발국과 최적의 협력모델을 마련해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
T-50 고등훈련기를 개발한 신동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항전체계팀 수석의 회고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한국은 2006년 세계 12번째 초음속 항공기 개발국가가 됐다. 2011년에는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T-50은 초음속 항공기 개발경험이 전무했던 1992년 2단계 차세대 훈련기사업(KTX-2)으로 탐색개발을 시작한 뒤 각종 어려움을 이겨내고 개발했다. 양산 초기만 해도 ‘핵심기술은 모두 해외에 의존한, 껍데기만 국산인 항공기’, ‘수출은 불가능한 국내용 항공기’라는 비야냥을 받았지만 2011년 이후 현재까지 4개국에 56대, 약 3조원어치를 수출하며 외화벌이의 주역이 됐다.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일자리도 만들었다.
항공기 독자 개발 능력의 중요성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돕기 위해 이란에 판매했던 F-14 전투기의 후속 지원을 중단했다. 수리부속이 부족해지자 이란은 전투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능력이 없거나 후속지원이 끊긴다면 아무리 좋은 전투기라도 고철 신세를 면할 수 없음이 확인된 사례다. T-50 사업은 항공기 독자 개발능력 확보와 국내 항공산업 육성이란 목표로 시작됐다. 출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고등훈련기를 개발할 필요성이 없으며 그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종전처럼 해외에서 바로 사들여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숱한 논란 끝에 F-16 전투기를 기술도입으로 생산하는 한국전투기사업의 절충교역 일환으로 해외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게 되면서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 사업의 탐색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T-50이 탄생할 때까지 KAI 엔지니어들에게 휴일은 없었다. T-50이 애인이었고 개발현장이 휴가지였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 관리체계(PDM)를 활용한 동시공학적인 최첨단 디지털 개발기법을 적용하고 컴퓨터 목업(COMOK=실물크기의 모형)을 활용, 구조물을 점검하며 개발기간을 줄였다. 공군과 록히드 마틴 등의 자문 덕분에 우수한 기동성을 갖춘 데다 첨단장비를 채택한 T-50을 개발할 수 있었다.
초음속을 선택한 공군의 결단
T-50은 1990년 소요제기 단계에서 훈련기와 공격기의 두 가지 용도가 제시됐다. 탐색개발 단계에선 훈련용 아음속이냐 공격용 초음속이냐가 최대 이슈였다. 공군은 기술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초음속을 선택했다. 영국의 고등훈련기인 호크가 경공격기로 성능개량을 추진했지만 아음속 항공기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장 개척에 실패한 것을 감안했다. 2000년 이후 공군은 노후화된 F-5 전투기 교체방안으로 T-50을 모체로 한 전투기 소요를 제기했다. T-50의 성능개량을 통해 FA-50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KAI는 T-50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항공기 통합 및 시험검증기술을 바탕으로 무장투하 정확도 검증과 잔여무장시험, 공대공·공대지 미사일 발사시험 등을 5년간 순조롭게 진행했다. FA-50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려면 T-50에 없던 신규 레이더, 생존장비, 스마트무장 통합이 이뤄져야 했다. KAI는 해외 기술 지원 속에 주도적으로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FA-50에 장착된 레이더는 기술발전에 따라 T-50 체계개발 당시 장착한 것보다 성능이 좋은 것으로 교체됐다. KAI는 FA-50 레이더를 TA-50 전술입문기에 붙이기로 한 뒤 장착작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엔지니어들은 3년여 동안 레이더업체와 협력해 레이더를 운용하기 위한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다.
FA-50은 공중 전투기동, 대지 및 공중 사격, 공중요격, 저고도 항법 등의 전술능력과 고성능 비행훈련을 교육할 수 있는 항공기다. KAI는 FA-50 개발을 마친 뒤 정비 임무도 맡았다.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 개선뿐만 아니라 레이더 소프트웨어 오류도 발견, 담당 업체에 개선을 요구했다. 전투기의 핵심인 레이더와 센서 등 임무장비와 미사일, 정밀유도폭탄 등 무장통합기술까지 확보, 2014년 10월 FA-50의 전력화를 마쳤다.
‘발등의 불’ KF-X, 차질없이 개발해야
KAI는 T-50과 FA-50을 통해 전투기 개발기술의 90% 이상을 확보했다. 정부는 미국 정부가 끝내 이전을 거부한 네 가지 체계통합기술을 자체적으로 획득, 한국형 전투기(KF-X)를 예정대로 2025년까지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KF-X 시제기의 초도비행에 발맞춰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의 시험개발 시한을 2021년 12월 말로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기기로 했다.
T-50 시리즈의 성공신화를 KF-X에 이어가는 것은 공군의 전력 강화는 물론 한국 항공산업의 도약을 위한 과제다. 범국가적 기술역량 결집을 위해 정부 부처, 정부출연 연구기관, 기업과 대학 간에 역할을 효율적으로 나누고 해외 업체 및 공동개발국과 최적의 협력모델을 마련해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