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패러다임 변화
한때 신흥국이 세계 경제를 되살릴 구원자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많았다. 저성장 국면에서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신흥국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투자심리를 달궜던 ‘신흥국 찬가’는 조용히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환점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현재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유럽이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경기가 빠르게 개선됐다는 얘기다. 인도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기 둔화와 브라질 러시아의 부진은 신흥국의 성장 동력을 약화시켰다.

미국 경제는 제조업 생산 증가세 등에 힘입어 계속 좋아지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도 나아졌다. 고용 사정이 개선되면서 수요 기반이 탄탄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2011~2012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역시 회복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유로화 약세로 수출이 늘면서 2013년 2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일본도 소비세율 인상 여파를 극복하며 과거 명성의 일부를 되찾았다.

신흥국은 많은 인구와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다. 물론 앞으로도 글로벌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신흥국의 독립적인 경쟁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자원 기반의 경제 구조를 갖춘 러시아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산업 다각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원자재 가격에 따른 낙수효과에 기댄 국가들의 경쟁력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탈동조화 현상은 투자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선진국과 신흥국 주가지수를 보면 5년간 선진국은 45.4% 상승한 데 비해 신흥국은 18.7% 떨어졌다. 글로벌 주식형 펀드 자금도 올 들어 선진국에는 순유입, 신흥국에서는 순유출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투자자가 금융위기 전에 가입했던 신흥국 펀드의 빠른 수익률 회복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단행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 원자재 가격 반등도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 신흥국에 대한 과거의 인식을 버리고 현재 시점에서 투자 방향과 전략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은경 < 국민은행 WM컨설팅부 투자전략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