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현 프로는 기자가 어프로치 다운스윙을 하려는 순간 클럽헤드를 손으로 잡고 놔주지 않았다. ‘1인치 핸드포워드’를 잘 하려면 그립을 목표 방향으로 먼저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조도현 프로는 기자가 어프로치 다운스윙을 하려는 순간 클럽헤드를 손으로 잡고 놔주지 않았다. ‘1인치 핸드포워드’를 잘 하려면 그립을 목표 방향으로 먼저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생각이 너무 많으세요. 이거 정리 안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텐데….”

이럴 줄 알았다. 어니 엘스의 부드러운 다운스윙과 제이슨 데이의 파워 임팩트, 루이 우스트히즌의 유려한 폴로스루, 로리 매킬로이의 완벽한 피니시…. 언제부턴가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한 ‘명품샷’들은 약이 되지 못했다. ‘보물’이 될 것만 같았던 그 이미지들은 기어이 스윙을 꼬아놓고야 말았다. 눈높이만 확 높아진 핸디 80대 초중반 골퍼들이 겪는 ‘어쩌다 싱글’ 증후군이란 게 딱 이거지 싶었다. 금세 언더파라도 칠 것 같았던 우쭐함과 이와 반대로 늘어난 타수를 받아든 현실의 괴리는 컸고 그만큼 아팠다.

지난 5일 경기 시흥시 솔트베이GC. 조도현 프로(42)는 쫄쫄쫄 굴러가는 기자의 드라이버샷을 지켜본 뒤 ‘머릿속이 복잡한 게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챔피언티에서 친 그의 드라이버샷은 250m를 빨랫줄처럼 날아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거리는 포기하자.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는 한국프로골프(KPGA) 1부투어에서 10년 뛰었지만 우승 경력은 없다. 하지만 프로 지망생 사이에서 ‘족집게’ 쇼트게임 레슨으로 이름나 있다. 최나연(28·SK텔레콤) 이정민(23·비씨카드) 정연주(23·CJ오쇼핑) 등이 그에게 배웠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샷마다 그의 시선이 따갑게 등 뒤에 꽂혔다.

4번홀까지 2오버. 퍼팅이 오른쪽으로 자꾸 빗나갔다. 파 행진을 벌이던 그는 네 번째 홀에서 10m쯤 되는 버디 퍼팅을 홀컵에 떨궜다. S라인인 까다로운 퍼팅 라인을 정확히 읽은 결과다.

“퍼팅이 예술이네요!”

‘천재적 어린 시절’ 스토리를 기대하며 던진 ‘립 서비스’ 뒤에 돌아온 건 뜻밖의 고백이었다.

“골프가 너무 안돼서 투어를 그만뒀어요. 요즘 퍼팅이 투어 뛸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때 이 정도만 했어도 상금 많이 버는 건데….”

"손을 공 1인치 앞에 두고 끌어쳐야 뒤땅 안나"
그는 미국의 빌 하스처럼 ‘골프 명가’ 출신이다. 부친이 1974년 당시 메이저대회인 한국오픈, 1976년 오란씨오픈을 제패한 조태운 KPGA시니어회 회장(75)이다. 조 회장이 친동생인 조태호 프로(72)와 함께 출전한 2004년 KPGA 챔피언스투어에서 우승컵을 놓고 벌인 형제간 연장전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다.

7번홀에서 다시 버디를 잡은 그에게 “골프 DNA가 있나봐요”라고 했더니 “골프는 연습”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다만 원리를 알고 연습해야 한단다. 그는 “투어를 그만둔 뒤 오히려 쇼트게임 원리를 많이 연구했는데 그게 레슨 프로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반을 보기 없이 2언더파로 마친 그에게 퍼팅의 기본을 물었다. 그는 공부터 보여줬다.

“퍼팅 라인을 공에 그려 넣는 게 좋은 퍼팅의 시작입니다. 굴러가는 공의 라인이 삐뚤삐뚤한지 보는 습관을 들여야 문제점을 금세 찾을 수 있고 실력도 빨리 늘어요.”

퍼팅에 신경을 너무 집중한 탓일까. 후반 들어 ‘훅병’이 다시 도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드라이버가 왼쪽으로 마구 휘었다. 1~2m짜리 짧은 퍼팅까지 말을 듣지 않자 보기, 더블 보기가 쏟아졌다. 속에서 불이 났다. 드라이버는 감기처럼 왔다 가지만 짧은 퍼팅 고장은 좀처럼 고치기 힘든 병이다.

조 프로는 “쉬운 걸 자꾸 실수한다”며 점 공략법을 써보라고 했다. 홀컵과 공을 직선으로 연결한 뒤 공에서 가까운 쪽 선 위에 점을 찍고 그 점까지 퍼터 페이스를 밀어 가져다놓으라는 주문이다. 13번홀에서 1.5m쯤 되는 퍼팅을 그대로 해봤다. 어색하긴 했지만 덕분에 두 번째 파를 잡았다.

“롱퍼팅에선 거리감이 방향보다 더 중요해요. 15m가 넘는 긴 퍼팅은 차라리 홀컵을 보고 퍼팅하는 게 좋습니다.”

그 역시 몸에 기억된 ‘본능’을 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슬치기, 야구 등 동그란 물체로 거리를 맞춰야 하는 놀이로 이미 대다수의 골퍼 몸 안에 훌륭한 감각자산이 축적돼 있다는 얘기다.

자기만의 퍼팅 스타일을 완성한 뒤에는 바꾸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투어프로 시절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에 퍼터와 퍼팅 방식을 자꾸 바꾸면서 타수가 거꾸로 늘어났다.

“그때 멋모르고 1년에 예닐곱 번씩 퍼터를 바꿨으니 무식했던 거죠.”

그는 쉬운 어프로치 레슨으로도 유명하다. “가능하면 백스윙을 작게 하면서 거리를 멀리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백스윙이 프로처럼 크면 연습량이 부족한 아마추어는 실수할 확률이 높습니다.”

백스윙을 작게 하되 헤드 페이스를 앞으로 뉘어 강하게 치면 브레이크가 걸려 공이 걱정하는 만큼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그립을 잡은 손을 임팩트 직전 타깃 방향으로 클럽헤드보다 먼저 끌고 가는 ‘1인치 핸드포워드’다. 뒤땅, 토핑이 확 줄어드는 비법이다.

그는 “이 1인치 핸드포워드를 편하게 할 수 있느냐가 결국 고수와 하수의 경계”라고도 했다.

17번홀에서 페어웨이 벙커 탈출에 실패하자 그는 ‘내가 즐겨 쓰는 방식’이라며 벙커샷 방법을 하나 알려줬다. 공의 꼭대기에 아이언 헤드를 닿을 듯 말 듯 올려놓고 스윙을 해보라는 것이다. 가장 흔한 실수인 벙커샷 뒤땅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험이 있단다.

익숙하지 않은 여러 기술을 의식적으로 적용한 탓일까. 13번홀 이후 파를 단 하나도 잡지 못했다. 마지막홀까지 버디로 마친 그와의 점수 차가 20타로 벌어졌다. 68 대 88. 한 달도 안 돼 같은 코스에서 타수가 10타나 불었다. 안쓰러운 듯 그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도 한때 11언더파까지 쳐봤어요. 못 칠 땐 공식 대회에서 86타까지도 무너져봤고요. 이런 정도는 정말 자연스러운 겁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85타를 쳤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18번홀 더블 보기 퍼팅을 마무리한 뒤 모자를 벗고 악수를 청했다. 웃으려 했지만 웃어지진 않았다. 장소협찬=솔트베이골프클럽

시흥=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