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이 크게 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M&A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0년부터 올 9월까지 국내외 M&A 실적을 조사한 결과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인 구글은 이 기간에 154건의 M&A를 성사시켰고 IBM도 50여건의 M&A를 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40건이 넘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불과 37건에 머물렀다. 다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2000년 시총 50위권 내 국내 기업들로서 2014년에도 50위권 내를 유지한 기업이 30개나 된다고 한다. 모두가 제자리에 머물러만 있다.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에선 성공한 벤처들이 상장보다는 대기업 피인수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들도 벤처를 적극 사들인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간접비와 설비투자를 줄일 수 있다. 벤처들은 기업공개(IPO)까지 ‘죽음의 계곡’을 버텨야 하는 소모전을 없앨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처럼 시장이 급변하고 투자 리스크도 큰 분야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 따로 놀고 있다. 기업소득환류세제만 하더라도 해외 M&A는 투자로 보지 않는다. 국제적 이중과세도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기업이 M&A에 나서려고 하면 ‘문어발 경영’이요 기술탈취라는 비판이 나온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출자규제도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역동성이 살아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국내 기업들에 중국 기업 M&A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먼저 기업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줘야 한다. 규제가 그대로 온존하는 상황에서 M&A만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