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천영숙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 이삼하 페루한인회장, 박남희 터키한인회장. 재외동포재단 제공
왼쪽부터 천영숙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 이삼하 페루한인회장, 박남희 터키한인회장. 재외동포재단 제공
“여자가 무엇을 하겠느냐던 교민들이 이제는 저 없으면 안 된대요.”

세계 각국에 흩어진 재외동포를 이끄는 여성한인회장들의 얘기다. 한인사회에서도 여성 파워가 거세다. 6일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 80여개국의 한인회장 357명 중 16%인 57명이 여성이다. 1970년 파독 간호사로 파견돼 45년간 유럽한인사회에 몸담은 천영숙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한인회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했다. “2013년 12월 회장으로 임명됐을 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여자라서 정치인과 인맥 형성 등 대외관계 능력이나 업무추진 역량이 부족할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죠.” 천 회장은 “일 잘하는 여성한인회장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편견들도 점차 깨지고 있다”고 했다.

1995년 페루로 이주해 2013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이삼하 페루한인회장은 “여자라서 어려운 점은 없다”며 “오히려 교민들에게 친근하고 섬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페루에는 젊은 시절 선원으로 일하다 정착한 무연고자 어르신이 많아요. 한인회에서 이분들을 찾아가 라면, 김치, 떡을 가져다드리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제가 가면 며느리, 딸 같다고 반가워하시죠.” 이 회장은 “한인회장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이런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러드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 자녀가 있어도 외면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은데 저희가 대신 상주 역할을 하면서 궂은일을 하다 보면 교민들도 발 벗고 도와준다”고 했다.

박남희 터키한인회장도 여성 특유의 세심함으로 인정을 받았다. 1986년 터키에 진출한 한인 1세대인 박 회장은 “2012년 한인회장으로 임명된 뒤 홈페이지 개편에 ‘올인’했다”고 말했다. 여행사를 운영한 노하우를 살려 웹사이트를 디자인하고 한인 주소록을 만들어 교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동안 교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광고를 유치했는데 홈페이지가 좋아지니까 자연스레 기업들에도 광고 의뢰가 들어왔어요. 지금은 교민들의 회비를 따로 걷지 않고 광고 수익만으로 한인회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인회장으로서 필수적인 요소로 ‘봉사정신’과 ‘경제력’을 꼽았다. 대부분의 한인회장이 무급 봉사직이어서다. 한인회원들의 회비나 후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약사 출신으로 약국을 운영하면서 현지에서 중장비를 임대하는 하나로건설을 창업한 이 회장은 “월급도 못 받고 일하는데 돈 나갈 일은 많은 자리가 한인회장”이라며 “뼛속부터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천 회장은 “정부가 나서서 봉사정신과 애국심을 갖춘 차세대 한인회장을 키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외동포 1세대들은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이 찡했는데 2, 3세대들은 그렇지 않아요. 차세대 재외동포들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해서 한인회장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