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노동시장의 후진성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매기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26위, 2015년 기준)이 대만(15위), 말레이시아(18위)보다 뒤처진 것도 ‘노동시장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시장 효율성은 144개국 중 86위로 중하위다.

노동시장 후진성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양극화로 이어진다. 특히 전체 근로자 중 10%가량을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현행 근로체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간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의 인식이다. 미래를 짊어질 청년층이 취업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이 같은 인식은 한국경제신문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 분야’ 설문 결과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청년층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에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21.3%, ‘대체로 그렇다’는 응답이 40.2%였다. 응답자의 61.5%가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꼽았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1.1%에 그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임금을 받으면서 해고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하고 정년까지 보장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행태가 근로유연성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청년층의 신규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요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일반 해고 요건 완화’에 대해서도 국민 절반 이상은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경영자의 필요에 따른 해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존 근로자의 자율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에 ‘그렇다’는 답변이 56.4%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40.8%)보다 많았다. 저(低)성과자나 업무 부적응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는 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도 핵심 과제로 논의됐지만 노조 측 반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는 법 개정 대신 일반 해고 지침을 마련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방침이지만 이 또한 노조의 사전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경제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과제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꼽은 응답이 31.5%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규제 완화’(27.3%), ‘근로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16.3%), ‘벤처기업·창업 지원 강화’(11.5%) 등의 순이었다.

능력에 상관없이 근무 연한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는 현행 임금체계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성과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그렇다’는 답변이 74.6%에 달했다. ‘그렇지 않다’는 21.0%에 그쳤다. 임금피크제 도입에는 66.0%가 찬성했다.

노동개혁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을 묻는 질문에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꼽은 응답이 35.5%로 가장 많았다. ‘정치권의 포퓰리즘’(23.3%), ‘정부의 개혁 의지와 리더십 부족’(20.5%), ‘경영자의 과도한 욕심’(15.0%) 등이 뒤를 이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