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서울대 인문계열의 한 전공과목 강의실. 강의에 열중하는 교수의 목소리 사이로 100여명의 학생이 한 단어라도 놓칠새라 분주히 노트에 강의 내용을 받아 적는 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 연결된 키보드로 강의 내용을 받아 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교수가 “질문 있나요?”라고 물었지만 대부분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필기를 마무리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한 학생은 “교수가 말한 내용을 정확히 받아 적어야 중간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며 “녹음기로 전체 강의 내용을 녹음해 다시 옮겨 적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 강의실의 이런 풍경은 창의적인 인재 배출과 거리가 먼 대학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입시 위주의 수동적인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 10년 전 커리큘럼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공급자 중심의 수업 내용은 산업 현장과 대학 교육 간 괴리를 키우는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70.9%·작년 기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바로 데려다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입시 위주 교육에 길들여진 대학생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지난해 펴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서울대에서 평점 4.0(4.3만점) 이상 받은 최우등생 46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해 그들의 고득점 비결을 분석했다. 이 박사가 관찰하며 발견한 공통점 한 가지는 ‘교수의 농담까지도 받아 적는 철저한 필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맹목적인 수용성이었다. 이들 중 41명은 “교수보다 본인의 생각이 더 맞는 것 같아도 시험이나 과제에 자기 의견을 적는 걸 포기했다”고 답했다.

대학을 학점 등 취업 스펙을 쌓는 곳으로 생각하는 학생도 많다.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 경영학과 학생은 “일부 대기업이 서류전형에서 학점을 안보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학생은 없을 것”이라며 “학점 관리는 가장 밑에 기본으로 깔리는 취업 스펙”이라고 했다.

기업 “톡톡 튀는 구직자는 많지만…”

질문하기를 꺼리는 대학 졸업생들이 취업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산업 현장의 수요와 대학 졸업생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은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톡톡 튀는 개성을 지닌 구직자는 많지만 채용해 보면 전공 분야에 대한 기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교육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전국 40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의 업무수행 평균 점수는 76.2점으로 2010년, 2012년 조사와 비교해 각각 2.8점, 1.7점 떨어졌다. 경총 관계자는 “구직자들의 스펙 수준이 높아졌을지 몰라도 기업들이 원하는 직접적인 업무수행 만족도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대로 U턴하는 4년제 졸업생

4년제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학생 중에 취업을 위해 전문대에 재입학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생 중 전문대에 재입학한 학생은 지난 4년(2012~2015년)간 5017명이었다.

이들은 4년간 등록금으로 쓴 2288억원 외에 전문대 졸업을 위해 1569억원을 추가로 써야 한다. 이남식 계원예술대 총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은 “산업 트렌드에 맞춰 교육 콘텐츠와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선진 대학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교수에게 맞춰 커리큘럼이 짜이는 우물 안 대학교육으로는 기업들의 요구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경제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문가들은 산업 현장과 대학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해법으로 △산학연계 프로그램 활성화(36.3%) △현장 중심의 대학교육(30.3%) △중소기업 청년고용 유인책 강화(17%) △취업진로 지원 프로그램 제공(10.3%) 등을 꼽았다.

이정호/오형주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