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일산점에서 근무 중인 박세하 씨(오른쪽)가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백화점 일산점에서 근무 중인 박세하 씨(오른쪽)가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백화점 일산점 영패션관에서 파트리더(영업관리자)로 근무하는 박세하 씨(30)의 전공은 영상디자인이다. 2013년 백석대를 졸업한 박씨는 롯데에 입사하기 위해 여느 동기들처럼 도서관에서 영어나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았다. 직장 경력이라고는 전공을 살려 KTH에서 모바일 콘텐츠 가공 업무를 1년간 해본 게 전부다.

그런 박씨가 명문대 출신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롯데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롯데그룹이 올 상반기부터 시행하고 있는 ‘스펙태클’ 전형 때문이다. 스펙태클 전형 입사지원서에는 사진, 외국어성적, 자격증 소유 여부 등을 묻는 항목이 없다.

모집 요강도 기존 입사지원 관행과는 다르다. 롯데칠성음료 영업직 모집 공고는 ‘당사 제품 중 택일해 어떤 식으로 판매량을 늘릴 것인지, 본인이 주류 영업사원이라는 가정 아래 기획안을 내시오’라는 식이다.

박씨는 휴학 중 호텔과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주효했다. 호텔 연회장 홀서빙을 하면서 자신의 서비스에 만족해하는 손님을 보고 즐거움을 느꼈다는 박씨는 스스로 서비스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롯데그룹 스펙태클 전형에선 전공도 빛을 발했다. 자신만의 강점인 서비스 마인드를 UCC(사용자 제작콘텐츠) 영상으로 제작해 면접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했다. 박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영업관리직에 지원했다”며 “영어나 학점 등 일반적인 스펙은 없더라도 실제 일하는 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는 채용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홍기획 신입사원 금재민 씨
대홍기획 신입사원 금재민 씨
대홍기획 디지털마케팅팀에서 일하는 금재민 씨(27)도 스펙태클 채용으로 입사했다. 그는 토익 점수나 학점이 아닌 ‘현장에서 통하는 실력’으로 롯데맨이 됐다. 2012년 국민연금관리공단 공모전을 시작으로 재학 중 40여차례 공모전에 참여했고, 아모레퍼시픽 공모전에서 글로벌부문 기획 최우수상을 받는 등 10여차례 수상했다. 수상 경력만으로도 광고기획사 입사가 가능하지 않냐는 질문에 금씨는 “오히려 대형 광고기획사는 영어나 출신대학 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대홍기획이 금씨를 선택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광고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금씨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8년 가까이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를 했다. 10원 단위 보수를 받는 일이었지만 금씨는 전단을 배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전단을 디자인해 가게 사장들에게 제안했다. 만점을 받은 시험지를 활용한 보습학원 전단, 현관문을 열면 자동으로 집안으로 투입되게 접은 도어록업체 홍보물 등이 히트쳤다. 금씨는 “빨간색의 큰 글씨로만 돼 있는 무성의한 전단을 보면서 ‘내가 직접 시안을 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전단지를 바꾼 뒤 실제 매출이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