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에서는 공부가 복제의 매개수단이 된다. 조선의 왕들에게 공부가 주는 생존의 의미는 신하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신권이 모욕을 줄 수 있는 것은 공부였다. (사진 = `사도` 스틸컷)



아버지와 아들은 숙명의 애증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오디이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어머니를 두고 경쟁관계라고 했다. 성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던 프로이트였다.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한 특히 생물학적인 여성을 욕망하는 남성, 수컷들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면에서 복제와 탈복제의 관계다. 아들은 복제의 대상이다.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려고 한다. 다만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보다 좀 더 나은 존재를 만들려고 한다. 가장의 이름으로 아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상황에서 유아기의 아들은 아버지의 복제프로그램에 따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오래지 않아 팔로워 행위를 그만두게 된다. 성취감은 자신의 `자존`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복제가 아버지 스스로를 위한 것이며, 자신에게는 고통을 줄 경우 아들은 생물학적인 보호본능을 발동하게 된다. 인간은 동물의 수컷 본능과 달리 사회적인 측면의 복제가 개입한다. 복제의 개입에는 매개수단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 `사도`에는 공부가 복제의 매개수단이 된다. 공부를 시키려는 아버지, 그러나 그 아버지에 시달리는 아들의 반항. 공부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 강조한 아버지 아들은 공부 이전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수단이라 함은 현대적으로 직업적인 생존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조선의 왕들에게 공부가 주는 생존의 의미는 신하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신권이 모욕을 줄 수 있는 것은 공부였다. 신권이 왕권을 철저하게 견제하려 했던 조선왕정 시스템은 왕에게 혹독한 학습을 요구했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자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왕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 목숨을 살리지 못할 수 있을 정도로 곤혹스러운 학습량이었다.



미천한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영조는 공부에 매진해 신하들의 공격을 봉쇄하려 했다. 신하들의 자존이 걸린 공부를 통해 그들을 이기려 한 것이다. 영조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도세자에게서 보여지길 기대했다. 혹은 자신보다 더 뛰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영조의 기대감은 자신의 콤플렉스와 더해져 높아가기만 했고, 그럴수록 사도세자는 질책의 대상이 됐다. 사도 세자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으나, 그 인정은 커녕 성취감 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아가 이는 존재 자체의 가치 즉, 자존감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 스스로 지키려는 본능의 발동은 필연적으로 아버지와 대립구도를 낳았고, 그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요구는 마침내 큰 갈등의 골을 만들었다. 물론 영조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야사의 내용같이 뒤주에 아들을 가둬 죽이는 왕이 됐다. 물론 사도세자가 정말 뒤주에 갇혀 죽었는지 그 역사적 진위를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대결, 갈등은 결국 아들의 죽음으로 맺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가족적으로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아들은 죽었다. 정치적으로는 집권자 왕의 말을 듣지 않은 후계자 세자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영조를 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살았을까. 사도세자가 영조의 말을 들어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그는 세종의 아들 문종처럼 일찍 죽었을 것이다. 큰 나무 밑에는 웬만한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아니 공부를 강조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 듯 싶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법 자체보다 더 생각해볼 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부의 방향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이다. 여기에 우리는 어떤 공부이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공부가 무엇이었는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영화 `사도`에는 빠져 있다. 예컨대, 가능하지 않은 이상을 강요한 조선 공부 시스템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말라죽이고, 나라경제를 피폐하게 했다. 그것은 정신의 피폐함으로 이어져 버렸다.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최소한 공자의 말을 들었어도 나았을 것이다. 공자를 따른다는 그들은 사실상 그러지 않았다. 공자는 예와 악을 사랑했고, 특히 음악에 대한 강조를 강력하게 했다. 그는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하지만 조선 사대부는 오로지 예만 강조하다가 망한 셈이었다. 반대로 연산은 공자의 말대로 음악과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시경을 중요시하고, 그 안의 노래 300여편을 모두 외우고 연주에 맞춰 즐겨 불렀다. 공자가 즐긴 시경의 많은 노래들은 남녀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을 짚고 있던 조선 임금이 연산이었다. 연산의 경우 신하들은 공자의 이같은 감각적이고, 예술적 즐거움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관념적인 이치의 세계에 경도돼 있었다. 연산은 그들과 달리 섹슈얼리티 미학을 거부하지 않았다. 연산은 그런 관념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진 신하들에게 반발한 것이다. 이런 연산을 신하들은 패륜 군주로 몰아갔다. 이러한 몰아대기는 영화 `왕의 남자`나 `간신`에도 여전히 등장한다. `간신`에 등장하는 채홍사도 조선왕조실록을 살피면 매우 과장됐으며, 그것을 누가 부풀렸는가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영화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은 맥락을 놓쳤기 때문이다.



어디 세상의 공부의 즐거움이 서책에만 있겠는가. 사도세자도 역시 그러했다. 영조는 사대부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공부를 강조하다가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였다. 조선이 달라질 수 있었던 영정조 시대는 그런 쓸데 없는 공부에 매진했다.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했다면, 조선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이나 사상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이 공부한 것은 신하들을 이기기 위함이었다. 즉, 당장 눈앞에 권력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이들과의 이기기 위한 싸움에 몰입했던 것이다. 아버지 세도세자를 대신해 늙은 영조의 눈에 들고자 공부에 매진한 한 정조조차 문무예악의 `공자의 나라`가 아닌 꼬장꼬장한 `학자 주의의 나라`를 만들려하다가 마지막 국력을 모두 소진했다.



공자는 말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흔히 말한다. 사도세자가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갖게 했다면,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조선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한 가지 빠진 점이 있다. 개인의 공부는 이런 수준에 머물겠지만, 왕들의 공부, 리더들의 공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즐거움의 근본 원인에 관한 것이다. 사도세자는 공부를 해서 자신이 실제 적용해 정책적인 결과로 많은 백성들이 행복을 찾는 사례를 얻지 못했다. 만약 그러한 즐거움을 맛보았다면 영조에게 저항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책중심의 공부만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적인 문화예술이나 섹슈얼리티에만 빠지는 공부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공존 공생의 선순환을 이루는 공부를 통해 현실적인 성취감을 얻을 때, 스스로 인정이 확증되며,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은 단지 자신 스스로 지키는데 머무는 이기적인 존재를 넘어 이타적인 존재라는 인정과 그에 대한 자존감을 가질 때, 스스로 행복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점이 영화 `사도`에서 아쉽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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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기자 wowsports08@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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