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사 교과서 바로 세우기
한국사 교과서 발행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쟁점은 이달 말 교육부가 고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는 국정(國定)으로 할지, 현행처럼 민간에서 발행한 것을 국가가 심의·승인해주는 검정(檢定)을 유지할지다. 최종 결정권자인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정화 뜻을 내비치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거세게 나오는가 하면 기존 교과서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은 찬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불똥은 정치권으로도 튀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달 초 국회 연설에서 “편향된 교육을 막기 위해 국정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군사정부로의 회귀”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0일 교육부의 국정감사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됐다.

그런데 양측의 주장을 보면 반대론자들은 논리에 허점이 있고, 찬성론자들은 이유에는 공감하지만 국정화라는 수단의 적절성에 의문이 간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논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화된 시각을 학생들에게 강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앞세워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현재 쓰이는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시중의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교학사 것을 제외하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른바 ‘민중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다양성은 내용이 결정하는 것이지 발행의 형식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민중사관적 교과서들은 북한을 공산화시킨 소련 군정은 ‘간접 통치’를 했다고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남한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한 미국 군정은 ‘직접 통치’를 했다고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전 농민을 현대판 농노로 전락시킨 북한의 토지개혁은 무상몰수·무상분배로 미화하고, 사실상 소작이 사라지게 한 남한의 농지개혁은 미흡했다고 비판한다. 6·25전쟁에 대한 북한의 책임도 희석시키고 있다. 권위주의 시기 남한의 독재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거듭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독재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남한의 경제적 성취는 과소평가하면서 북한의 비참한 현실은 호도한다.

현실이 이렇고 보니 이들 교과서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저의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에서 학계 일각, 그리고 국민 다수가 현재의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리가 있다.

문제는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손보는 데 국정으로 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국정 교과서가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국정 교과서라 할지라도 집필위원회 같은 게 구성될 것이기 때문에 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다양한 시각을 반영할 수 있다. 또 해석이 다르거나 쟁점이 있는 사건들은 이를 교과서 내에 병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정 교과서가 다양성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단은 논리적 비약이다.

다만 근현대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들이대는 격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부분과 구성은 새로운 집필기준을 마련해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에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일이다. 시장에 맡겨도 될 일을 굳이 논란과 분열을 무릅쓰면서 시도할 이유는 없다.

가장 편향성이 크다고 평가되는 금성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널리 쓰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체제가 사용하기 좋게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일선 교사들도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나 헌법적 가치와 관련된 부분은 집필기준에서 자세한 지침을 마련해 해결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더 경쟁력 있는 비(非)민중사관 교과서가 시장에 나오기를 기다려 보자.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