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대통령 떠난다"…아르헨티나에 몰리는 글로벌 자금
지난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분쟁 끝에 기술적 디폴트(특정기간 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아르헨티나에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원자재값 급락,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 등으로 투자자들이 앞다퉈 신흥국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만은 예외다. 그동안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을 펴온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다음달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해 차기 정부에선 지금보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채권시장 강세

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 들어 아르헨티나 채권시장은 다른 신흥국들과 달리 ‘나홀로’ 강세(채권값 상승)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발 위기 우려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JP모간의 아르헨티나 채권지수는 지난달 이후 6% 올랐다. 전체 신흥국 채권지수가 이 시기 급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르헨티나 통화인 페소화 가치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올 들어 3분의 1가량 떨어졌지만 페소화 가치는 8% 하락에 그쳤다.

무엇보다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아르헨티나의 달러표시 채권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헤지펀드 등 주로 투기성 자금이 들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아르헨티나에 ‘진짜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기사에서 “지난 1분기 자산운용사 인베스코가 아르헨티나 채권 투자를 시작했으며 2분기에는 블랙록, 알리안츠, 반에크 등이 아르헨티나 채권 투자를 재개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강력한 포퓰리즘 경제정책을 쓰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퇴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다음달 25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데, 이미 연임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다.

○“미국 헤지펀드와 재협상 가능성”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2007년 취임한 뒤 아르헨티나 공공부문 근로자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4분의 1인 400만명으로 늘어났다. 6년 전에는 280만명 수준이었다.

또 그가 취임하기 전인 2006년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0.8% 규모였던 보조금 지급은 지난해 5.1%까지 증가했다. 194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 이후 이 같은 선심성 정책이 이어지면서 1913년 세계 10위였던 아르헨티나 경제는 24위(작년 기준)로 급속히 악화했다. 이 같은 특이한 경제 퇴행을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고 부를 정도다.

투자자들은 다음 정부에선 ‘역설’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이커 케이비에즈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현재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좌파 여당 후보 다니엘 시올리가 당선되면 (보다 시장 친화적인) 점진적 변화를 약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수우파인 야당 후보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시올리보다 더 포퓰리즘 정책과 거리를 두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차기 정부가 국제 금융시장에 복귀하기 위해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국채 상환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그간 이들과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아르헨티나 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스크 컨설팅 회사 스트랫포는 지난 1일 고객에게 “아르헨티나는 분명히 변하겠지만,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큰 폭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