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황금주파수 놀려야 하는 방송사
말 많던 700메가헤르츠(㎒) 대역 황금 주파수 배분안이 확정됐다. 정부는 27일 국무조정실 산하 주파수심의위원회를 열고 지상파 방송 5개 채널의 초고화질(UHD) 방송용으로 700㎒ 대역을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로 확보된 700㎒ 대역(698~806㎒·108㎒폭)은 주파수가 멀리까지 전달돼 네트워크 구축 비용이 적게 드는 ‘황금 주파수’로 불린다. 전체 108㎒폭 가운데 작년 말 국가재난통신망에 20㎒폭을 사용하기로 했고 이날 UHD 방송에 30㎒폭을, 이동통신에 40㎒폭을 할당하기로 했다. 관련 주파수를 원했던 통신과 방송 분야에 골고루 나눠주는 상생 방안을 마련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주파수 분배안을 확정했지만 논란이 사그라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이번 배분안 자체가 경제성보다는 정치적 요구에 의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작년 말 유례없이 국회에 주파수소위를 만들었고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지상파 방송 주파수 할당을 관철시켰다.

지금까지 700㎒ 주파수 대역을 지상파에 주기로 결정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독일은 최근 경매를 통해 이 대역을 통신에 할당하며 10억44만유로(약 1조2450억원)를 받았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는 주파수를 쓰면서 사용료도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국민 편익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당초 올 하반기부터 UHD 본방송을 하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방송 표준화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기할 뜻을 비치고 있다. UHD 방송 장비와 콘텐츠 관련 투자 예산을 편성해 놓은 곳도 거의 없다. 1조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 황금 주파수를 앞으로 2~3년간 놀리게 된다면 두고두고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려면 UHD 상용화 계획을 서둘러 확정해야 한다. 정부는 지상파와 협의해 연말까지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이를 보다 앞당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지켜지지 않으면 관련 주파수를 회수할 수 있는 강력한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공적 자산인 주파수의 활용성을 높일 수 있는 이런 기회마저 놓치지 않길 바란다.

김태훈 IT과학부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