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좀비기업과 기업 구조조정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국내 대형 병원 응급실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응급실에 환자가 너무 많이 몰려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효율적 치료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병을 확산하는 숙주가 돼 버린 셈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응급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일컬어지는 한계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비(非)금융법인 2만5452개를 조사한 결과 한계기업 비율은 2009년 12.8%(2698개)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2014년 기준으로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이 100% 미만인 기업을 한계기업으로 정의했다.

좀비기업은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다. 제 힘으로 살아남을 수 없어 정부 등에 의존한다. 이런 좀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은 채 채권단 지원을 통해 연명하며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있다. 좀비기업 때문에 양질의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회사가 당장의 손실 인식을 회피하려고 한다거나 정치적 이유로 좀비기업에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경우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여력이 감소하게 된다.

경쟁에서 도태한 기업들이 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저가 경쟁을 촉발해 가격을 왜곡시키고, 거꾸로 정상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사태도 발생한다. 실제로 몇 년 전 지원으로 연명하던 모 건설회사가 저가 입찰로 시장 질서를 교란시켜 다른 기업들이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다.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기업에 지원이 계속된다면 이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해 국가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부실기업을 시장의 엄정한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구조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좀비기업으로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 응급실도 포화 상태에 돌입했을지 모른다. 고통스럽더라도 현재의 좀비기업들을 조속히 정리하고, 선제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좀비기업의 발생을 차단해 나가야 한다.

정우택 < 국회 정무위원장 wtc2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