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학 중 세계시장 흐름 눈떠…명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창업…100여국 판매 '패션계의 아마존'
지난 4월 거대 온라인 명품 쇼핑몰이 탄생했다. 이탈리아의 명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육스(Yoox)가 영국의 네타포르테(Net-a-Porter)를 인수합병한다고 발표하면서다. 두 업체의 매출을 합하면 13억유로(약 1조6400억원)에 달한다. 명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로는 세계 최대다. 주식교환을 거친 뒤 오는 9월 이탈리아 증시에 재상장한다. 합병 법인은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으로 불리게 된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을 따돌리고 네타포르테를 인수한 육스의 뒤에는 페데리코 마르체티 육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2000년 육스를 창업한 마르체티 CEO는 온라인 럭셔리계의 왕으로, 육스는 패션계의 아마존으로 불린다. 돌체&가바나 아르마니 구찌 디젤 등 38개 명품 브랜드가 육스를 통해 세계 100여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MBA 마치고 컨설팅 세상 변화에 눈떠

육스를 창업하며 패션계에 뛰어든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을 ‘아웃사이더(외부인)’라고 부른다. 창업 전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투자은행과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는 등 패션과 무관한 일을 했고, 육스 창업 후에도 일반 패션 업계 사람들과 달리 기술과 데이터에 근거해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가 패션과 관련이 있다면 이탈리아 출생이라는 것뿐이다. 마르체티 CEO는 이탈리아 동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인 라벤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피아트자동차의 창고를 관리했다. 어머니는 콜센터 상담원이었다. 자녀 교육열이 높은 부모는 아니었다. 그는 “부모님은 나를 잘 지도해주지도, 용기를 북돋워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야망이 있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더 하라고 부추기는 선생님이 없었지만 그는 알아서, 그것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나는 오랫동안 혼자였다”며 “내 스스로 모든 걸 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보코니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3년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밀라노지사에서 일했다. 이후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졸업했고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컨설팅회사인 베인&컴퍼니에서 일했다. 이 가운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뉴욕에서의 생활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을 꾸려나갈지를 배운 것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중심지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는 “라벤나에서 밀라노로 갔을 때 내 눈이 10배 정도 뜨였다면, 밀라노에서 뉴욕으로 옮긴 것은 거기서 또 10배 내 눈을 뜨이게 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가 본 것은 1998~1999년의 인터넷 창업붐이었다.

컨설팅회사에 사표 내고 창업

일단 밀라노로 돌아와 베인&컴퍼니에 취직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이미 창업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 8시면 집으로 돌아와 사업 계획을 짰다. 그리고 1999년 크리스마스날 사표를 냈다. 그는 “무모한 모험이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매우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탈리아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아니었다. 돈을 투자해줄 수 있는 벤처캐피털도 많지 않았다. 40여일을 벤처캐피털의 사무실을 노크하고 다녔다. 그들은 “누가 또 투자하기로 했느냐”고 물으면서 투자하기를 주저했다. 실제로 보여줄 것이 그에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명품 판매도 결국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이뤄지게 될 것이란 신념뿐이었다.

마침내 벤처투자가인 엘세리노 피올로부터 투자를 받아 2000년 6월20일 육스닷컴(yoox.com)을 열 수 있었다. 재고가 너무 많이 쌓였거나 시즌이 지난 명품을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창업은 어려웠지만 많은 디자이너와 명품 브랜드들이 있는 이탈리아는 육스의 빠른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육스의 첫 입점사인 디젤의 렌초 로소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곧 그에게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소개시켜줬다. 다른 명품 업체도 얘기를 듣고 줄줄이 육스를 통해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 2004년 일본에 진출했다. 창업 9년 만인 2009년엔 이탈리아 증시에 상장했다.

물류와 데이터 분석에 강점

육스가 성공한 것은 이탈리아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르체티 자신은 물류에 대한 투자와 사용자 데이터 분석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육스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10만2000평방미터에 이르는 물류창고가 있다. 매일 8000건의 주문을 처리한다. 매일 550만개의 상품이 입고돼 불량을 검사하고 사진을 찍고 태그를 붙여 저장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배송에 들어간다. 로봇이 물건을 옮기지만 배송을 위해 제품을 포장하고 리본을 다는 작업 등은 사람 손을 거친다. 그는 “핵심은 물건이 잘못 배송될 오류를 0.001%로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값비싼 명품인 만큼 배송 오류로 인한 신뢰도 하락은 더욱 타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5년 동안 쌓인 고객들의 주문 행태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도 육스의 자산이다. 육스는 2012년 신발전문 쇼핑몰인 슈스크라이브닷컴을 열었다. 신발을 주문하는 여성 고객의 3분의 2는 다른 종류의 상품은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지 않고 오직 신발만 구매한다는 점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발견한 덕분이다. 나라별 고객 특성도 나타난다. 가장 환불을 많이 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일본인은 업무시간에 주문하지 않고 주로 밤 12시에 사이트를 방문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빨간색, 이탈리아인은 보라색을 좋아한다. 남자들은 한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중국을 제외하곤 대부분 나라에서 여성 구매자 비중이 65% 정도다. 그는 “물론 데이터 분석만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나는 사람의 직감과 데이터 분석을 동시에 믿는 하이브리드형 CEO”라고 말했다.

마르체티 CEO는 “네타포르테와의 합병은 2009년부터 얘기를 해왔다”며 “역사상 이보다 완벽한 합병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네타포르테는 육스와 같은 2000년 6월 창업했다. 그는 “육스가 물류에 강점이 있다면 네타포르테는 마케팅에 강점이 있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