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지만 호주는 예외였다.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때도 성장을 이어나갔다. 호주의 제1 수출국인 중국이 꾸준히 성장하며 뒤를 든든히 받쳐준 덕이었다. 2013년 5월 호주달러는 미국달러 가치를 추월하면서 새로운 안전자산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중국 경기가 둔화하고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호주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9일(현지시간) 호주의 주요 수출품목인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호주 경제가 비틀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출 부진으로 정부 부채가 급격히 늘자 호주가 그리스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 무역수지 직격탄

호주의 지난 5월 무역적자는 27억5100만호주달러(약 2조3400억원)였다. 예상치인 22억호주달러보다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지난달뿐만 아니다. 호주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적자다.

원자재 의존적인 호주의 취약한 경제구조가 문제였다. 원자재 수출은 호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호주의 철광석 매장량은 세계 2위, 석탄은 5위다. 호주 중앙은행이 집계한 6월 원자재 수출 가격은 1년 전보다 17.9% 하락했다. 철광석은 2011년 t당 180달러에 거래됐지만 이달 들어 50달러 아래까지 내려갔다. 같은 기간 발전용 연료탄은 t당 15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졌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한 것도 호주 경제엔 악재였다. 2010년 10%를 넘어섰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부터 7%대로 떨어졌다. 호주와 중국의 무역 규모는 연간 1500억호주달러(약 127조6000억원) 정도다. 호주의 대(對)중국 수출량은 전체 수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원자재 수출 부진은 정부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올해 1분기 호주의 순외채는 GDP의 60%에 해당하는 9550억호주달러까지 치솟았다. 정부 지출 규모는 유지해야 하는데 무역 적자가 이어지면서 외국에 손을 벌리는 상황이다. 호주 시장분석기관 마켓이코노믹스의 스티븐 코쿨라스 이코노미스트는 “호주의 현재 부채 규모를 위험 수준이라고 평가할 순 없지만 원자재 경기 부진이 이어진다면 그리스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 경제성장률 전망치 낮춰

원자재 가격이 계속 떨어져 무역적자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호주 당국은 경기부양에 나섰다. 호주 중앙은행은 2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2.25%로 낮췄다. 소매판매가 8개월 연속 0%대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경기 흐름이 풀리지 않으면서 다음달 중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호주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하는 데 적극적이다. 무역을 활성화해 수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주요 수출시장인 동북아시아 국가가 공략 대상이다. 지난해 말 한국과의 FTA가 발효된 데 이어 올해 1월엔 일본·호주 경제동반자협정(JAEPA)이 발효됐다. 지난달에는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

그러나 호주 경제가 당분간 되살아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호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8%로 낮춰잡았다. 제임스 대니얼 IMF 호주담당 수석은 “지난 20여년간 계속됐던 3~4% 성장은 잊고 2.5%대 성장을 고려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