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세점 입찰은 많은 얘깃거리를 낳았지만 베일에 가려졌던 대기업 오너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그룹의 장래가 걸린 일인 만큼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 독려하는 과정에서 숨겨졌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공주과’라는 이미지가 적지 않았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 사장은 프레젠테이션(PT) 당일 아침 일찍 떡을 맞춰 직접 인천 영종도를 찾았다. PT 장소 근처 호텔에서 리허설을 진행 중인 양창훈·한인규 대표 일행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이 사장은 “너무 걱정 마세요. 잘되면 다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제 탓이니까요”라며 두 대표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한 직원이 “떨어지면 옷을 벗겠다는 각오로 하고 있다”고 비장하게 말하자 “나는 옷을 벗을 수도 없는데 어떡하느냐”는 농담으로 큰 웃음을 만들었다.

이 사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중단된 중국인 관광객 유치활동을 위해 제주로 중국으로 뛰어다니는 부지런함과 저돌성도 과시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소탈함도 돋보였다. 이 사장이 직접 발로 뛰는 동안 정 회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무를 지휘했다. 정 회장은 부동산 개발업이라는 회사의 전공을 살려 용산 아이파크몰에 들어설 면세점 설계·인테리어 도면까지 인프라를 꼼꼼히 챙겼다. 또 입찰일을 며칠 앞두고 면세점 태스크포스(TF) 사무실에 들러 “사무실이 덥지는 않느냐, 필요한 것은 없느냐”고 묻는 등 직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신경썼다.

PT 당일에는 아침 일찍 양 대표를 만나 “최선을 다했으니 그동안 준비한 대로 편하게 잘 마무리 해달라”고 힘을 실어줬다. 이후 해외 출장길에 오른 정 회장은 양 대표로부터 낭보를 접하고 이 사장과 전화통화로 축하 인사를 주고받았다.

12일에 귀국한 정 회장은 이 사장과 함께 고생한 TF 팀원들을 위한 축하 파티를 이번주 중 열 예정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