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빗물 저장·절수 변기 개발…교수가 왜 이런 걸 다 하냐고요? 물 부족 없는 세상 꿈꾸니까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적 빗물 전문가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세계적 환경賞 받은 '빗물 박사'…가뭄 때 빗물 중요성 깨달아
광진구 스타시티 시작으로 전세계 돌며 저장시설 설치
화장실 물 절약 '변기 박사'…물 소비 줄이려면 변기부터 바꿔야
서울대, 절수형으로 모두 교체…최근 '분뇨분리 변기' 개발 착수
세계적 환경賞 받은 '빗물 박사'…가뭄 때 빗물 중요성 깨달아
광진구 스타시티 시작으로 전세계 돌며 저장시설 설치
화장실 물 절약 '변기 박사'…물 소비 줄이려면 변기부터 바꿔야
서울대, 절수형으로 모두 교체…최근 '분뇨분리 변기' 개발 착수
서울 관악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35동) 건물은 여느 학교 건물과는 다르다. 언뜻 봐서는 다른 건물과 별 차이가 없는 이 건물의 비밀은 옥상에 있다. 약 2000㎡에 달하는 옥상의 절반을 각종 채소를 기르는 텃밭과 꽃이 핀 정원 등이 차지하고 있다. 2013년에 조성된 이곳은 어느새 인근 관악구 주민들의 생태학습장이 됐다. 서울대 학생들은 매년 11월이면 여기서 수확한 배추로 주민들과 함께 김장을 하고, 지역 내 저소득층 주민에게 배추 200여포기도 나눠주고 있다.
옥상 녹화를 주도한 주인공은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59)다. 한 교수는 “옥상에 텃밭을 가꾸면서 주민들이 찾아와 학생들과 함께 채소를 기르고 양봉도 하는 등 지역사회와 대학이 연결됐다”며 “지역의 이런 좋은 자원을 서울대는 지금까지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한 교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농부다. 미소에서는 천진난만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그에게서 농부와 같은 여유로움을 찾는다면 잘못 생각했다. 속사포처럼 빠른 그의 말은 얼마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라크 전쟁 중 현장근무는 큰 자산
지금은 ‘빗물박사’나 ‘변기박사’로 통하지만 원래 한 교수의 전공은 상하수도 등 수처리 분야다. 남들보다 두 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는 만 17세가 되던 1973년 서울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했다. “동기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리다 보니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미래에 대한 특별한 비전 없이 그저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가기 급급했어요.”
석사과정을 마친 뒤에도 동기생을 따라 1978년 현대건설에 들어갔다. 한 교수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해외토목설계부에 배치된 그는 1981년부터 1년간 이라크 남동부 항구도시인 바스라의 하수처리장 건설 현장에 파견나갔다. 당시 이라크는 이란과 1980년부터 전쟁 중이었다. 바스라는 샤트알아랍 강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는, 말 그대로 최전선이었다.
“하수관을 도시에 연결해야 해서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었는데 매일같이 이란군의 포탄이 날아들었어요. 그런데 포를 정확히 열 발 쏜 다음에는 더 이상 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란군이 포탄을 열 발까지 쏜 것을 확인하고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는 했죠. 한국에 있는 아내가 출산했다는 소식도 10일 만에 텔렉스(인쇄 전신기)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이 치열했습니다.”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는 자기만 알고 소심한 전형적인 ‘서울대생 스타일’이었다는 한 교수는 이라크 현장을 거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일을 더 잘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들과 자주 술을 마시며 함께 어울렸죠. 내가 선 하나를 잘못 그리면 수많은 사람이 고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현장’을 먼저 그리는 법을 배운 거죠. 나중에 귀국하니 회사에 ‘한무영이 사람됐다’는 소문이 쫙 퍼졌더라고요.” 가뭄으로 깨달은 빗물의 소중함
1992년 미국수도협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미국 교과서에 10페이지나 실릴 정도로 상하수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한 교수가 빗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었다. 2000년 무렵 한국에 찾아온 큰 가뭄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던 그는 일본에서 출간된 ‘빗물을 모아 쓰는 법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빗물이 대기오염으로 산성화됐다는 얘기만 있을 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빗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막상 걸러야 할 나쁜 성분을 거의 찾을 수 없었어요. 물을 어떻게 정화할지만 고민했는데 큰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한 교수는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빗물 재활용 시설을 개발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빗물에서 홍수와 가뭄 등 모든 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찾았다”며 “이전까지 상하수도에 머물던 관심 영역이 도시의 물 관리 전체로 옮겨가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 자양동에 들어선 주상복합 ‘스타시티’의 빗물저장 시설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당시 광진구 도시관리국장이 제 ‘팬’이었어요. 스타시티에 빗물시설을 넣는 대신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 처음 적용했죠. 이후 서울시에서 빗물시설을 설치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조례를 마련했습니다.”
한 교수의 설계에 따라 스타시티는 지하에 3000t 규모의 빗물 저장시설을 짓고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 등으로 재활용했다. 그 결과 가구당 1만5000원 정도인 수도요금을 월 100원대로 내리고 주변 지역의 잦은 침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로 한 교수는 2010년 국제물학회가 주는 창의프로젝트 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 빗물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2012년에는 심각한 식수난을 겪던 전남 신안군 가도에 빗물시설을 설치해 물 자급률 100%를 달성하게 했다. 한 교수와 신안군은 이 공로로 2013년 세계적 환경상인 에너지글로브어워드 국가상을 받았다.
한 교수는 2007년부터 전 세계를 돌며 빗물시설 설치 활동에 나서 지금까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6개국에 60여개를 설치했다. “빗물시설을 설치하러 해외에 나갈 땐 맨손으로 갑니다. 현지 주민들이 잘 모르는 최신 설비를 갖고 가면 금방 망가져 실패하기 때문이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니 모든 재료와 노동력은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았습니다.”
옥상 녹화 역시 빗물 활용 운동의 연장선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교수가 왜 이런 것까지 나서느냐’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서울시가 수천억원을 들여 관악산 입구에 짓고 있는 거대한 저류조(빗물 저장소) 공사를 놓고 동료 교수와 다른 의견을 내다 보니 ‘괴짜’로 통했다. 하지만 그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빗물 저장시설은 하류에 집중형으로 짓기보다는 건물마다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특히 옥상 녹화를 하면 물·환경·식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어 금상첨화죠.” 한 교수의 서울대 옥상 녹화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에너지글로브어워드를 2년 연속 수상한 데 이어 올해 세계물포럼에서 ‘워터 쇼케이스’ 상까지 받았다.
절수 변기에 이어 분뇨분리 변기 개발
한 교수의 관심이 빗물에서 변기로 옮겨간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최근 줄어든 소양강댐의 수위를 예금통장에 비유했다. “수입(강수량)이 줄었는데 지출(물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절수 변기’다. 가정마다 기존 수세변기(12L)를 초절수형 변기(4.5L)로 바꾸면 가정용수의 20% 이상을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에서 물 사용량이 가장 많은 서울대부터 바꿔야 한다”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그가 평의원회 등을 통해 물 절약의 중요성을 계속 알려나가자 서울대는 올해 여름부터 모든 변기를 절수 변기로 교체하기로 했다.
얼마 전 지진을 겪은 네팔에 ‘119토일렛’이라는 접이식 종이 양변기를 보내는 운동을 시작한 데 이어 ‘분뇨분리 변기’ 개발에도 들어갔다. “오줌에 들어 있는 질소와 인이 녹조 등 수질 오염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이에요. 우리 선조들이 오줌을 따로 모으는 ‘오줌장군’을 만들어 오줌을 비료로 사용했듯이 오줌만 따로 분리할 수 있는 변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화투의 ‘똥광’과 ‘비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여줬다. “현재 세계에서 10억명이 먹는 물이 부족하고 20억명이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 고통받고 있어요. 이것을 제가 가진 빗물 활용 기술과 세 가지 변기(119토일렛, 절수 변기, 분뇨분리 변기) 개발을 통해 풀어주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대지진' 네팔에 종이 변기 전달…물 없이도 용변 처리 가능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에 ‘119토일렛’이라는 긴급구호용 접이식 종이 양변기를 보내는 활동을 5월부터 벌이고 있다. 119토일렛은 접을 수 있는 튼튼한 골판지와 텐트 등으로 구성돼 어디서나 쉽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한 교수와 사회적 기업인 위시테크가 공동 개발한 이동식 변기다. 지진 등 각종 재난으로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 기존 수세식 변기를 쓸 수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한 교수는 “과거 아이티나 중국 쓰촨성 지진 때도 간이 화장실 공급이 늦어 용변 처리가 어려워지면서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며 “물을 쓰지 않으면서도 최대 15일간 안전하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악취 등을 예방하는 생화학제와 생분해 비닐팩을 함께 넣었다”고 말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간편하게 용변을 볼 수 있어 재난 현장은 물론 올레길이나 외딴섬 등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포털 다음의 ‘뉴스펀딩’에서 119토일렛을 네팔에 보내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인천 명현초등학교 5학년 학생 92명이 장터를 열어 여기서 모은 수익금 전액을 119토일렛을 네팔에 보내는 데 써달라며 한 교수에게 전달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옥상 녹화를 주도한 주인공은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59)다. 한 교수는 “옥상에 텃밭을 가꾸면서 주민들이 찾아와 학생들과 함께 채소를 기르고 양봉도 하는 등 지역사회와 대학이 연결됐다”며 “지역의 이런 좋은 자원을 서울대는 지금까지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한 교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농부다. 미소에서는 천진난만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그에게서 농부와 같은 여유로움을 찾는다면 잘못 생각했다. 속사포처럼 빠른 그의 말은 얼마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라크 전쟁 중 현장근무는 큰 자산
지금은 ‘빗물박사’나 ‘변기박사’로 통하지만 원래 한 교수의 전공은 상하수도 등 수처리 분야다. 남들보다 두 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는 만 17세가 되던 1973년 서울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했다. “동기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리다 보니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미래에 대한 특별한 비전 없이 그저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가기 급급했어요.”
석사과정을 마친 뒤에도 동기생을 따라 1978년 현대건설에 들어갔다. 한 교수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해외토목설계부에 배치된 그는 1981년부터 1년간 이라크 남동부 항구도시인 바스라의 하수처리장 건설 현장에 파견나갔다. 당시 이라크는 이란과 1980년부터 전쟁 중이었다. 바스라는 샤트알아랍 강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는, 말 그대로 최전선이었다.
“하수관을 도시에 연결해야 해서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었는데 매일같이 이란군의 포탄이 날아들었어요. 그런데 포를 정확히 열 발 쏜 다음에는 더 이상 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란군이 포탄을 열 발까지 쏜 것을 확인하고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는 했죠. 한국에 있는 아내가 출산했다는 소식도 10일 만에 텔렉스(인쇄 전신기)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이 치열했습니다.”
현대건설에 입사하기 전에는 자기만 알고 소심한 전형적인 ‘서울대생 스타일’이었다는 한 교수는 이라크 현장을 거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일을 더 잘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들과 자주 술을 마시며 함께 어울렸죠. 내가 선 하나를 잘못 그리면 수많은 사람이 고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현장’을 먼저 그리는 법을 배운 거죠. 나중에 귀국하니 회사에 ‘한무영이 사람됐다’는 소문이 쫙 퍼졌더라고요.” 가뭄으로 깨달은 빗물의 소중함
1992년 미국수도협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미국 교과서에 10페이지나 실릴 정도로 상하수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한 교수가 빗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었다. 2000년 무렵 한국에 찾아온 큰 가뭄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던 그는 일본에서 출간된 ‘빗물을 모아 쓰는 법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빗물이 대기오염으로 산성화됐다는 얘기만 있을 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빗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막상 걸러야 할 나쁜 성분을 거의 찾을 수 없었어요. 물을 어떻게 정화할지만 고민했는데 큰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한 교수는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빗물 재활용 시설을 개발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빗물에서 홍수와 가뭄 등 모든 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찾았다”며 “이전까지 상하수도에 머물던 관심 영역이 도시의 물 관리 전체로 옮겨가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 자양동에 들어선 주상복합 ‘스타시티’의 빗물저장 시설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당시 광진구 도시관리국장이 제 ‘팬’이었어요. 스타시티에 빗물시설을 넣는 대신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 처음 적용했죠. 이후 서울시에서 빗물시설을 설치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조례를 마련했습니다.”
한 교수의 설계에 따라 스타시티는 지하에 3000t 규모의 빗물 저장시설을 짓고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 등으로 재활용했다. 그 결과 가구당 1만5000원 정도인 수도요금을 월 100원대로 내리고 주변 지역의 잦은 침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로 한 교수는 2010년 국제물학회가 주는 창의프로젝트 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 빗물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2012년에는 심각한 식수난을 겪던 전남 신안군 가도에 빗물시설을 설치해 물 자급률 100%를 달성하게 했다. 한 교수와 신안군은 이 공로로 2013년 세계적 환경상인 에너지글로브어워드 국가상을 받았다.
한 교수는 2007년부터 전 세계를 돌며 빗물시설 설치 활동에 나서 지금까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6개국에 60여개를 설치했다. “빗물시설을 설치하러 해외에 나갈 땐 맨손으로 갑니다. 현지 주민들이 잘 모르는 최신 설비를 갖고 가면 금방 망가져 실패하기 때문이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니 모든 재료와 노동력은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았습니다.”
옥상 녹화 역시 빗물 활용 운동의 연장선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교수가 왜 이런 것까지 나서느냐’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서울시가 수천억원을 들여 관악산 입구에 짓고 있는 거대한 저류조(빗물 저장소) 공사를 놓고 동료 교수와 다른 의견을 내다 보니 ‘괴짜’로 통했다. 하지만 그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빗물 저장시설은 하류에 집중형으로 짓기보다는 건물마다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특히 옥상 녹화를 하면 물·환경·식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어 금상첨화죠.” 한 교수의 서울대 옥상 녹화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에너지글로브어워드를 2년 연속 수상한 데 이어 올해 세계물포럼에서 ‘워터 쇼케이스’ 상까지 받았다.
절수 변기에 이어 분뇨분리 변기 개발
한 교수의 관심이 빗물에서 변기로 옮겨간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최근 줄어든 소양강댐의 수위를 예금통장에 비유했다. “수입(강수량)이 줄었는데 지출(물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절수 변기’다. 가정마다 기존 수세변기(12L)를 초절수형 변기(4.5L)로 바꾸면 가정용수의 20% 이상을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에서 물 사용량이 가장 많은 서울대부터 바꿔야 한다”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그가 평의원회 등을 통해 물 절약의 중요성을 계속 알려나가자 서울대는 올해 여름부터 모든 변기를 절수 변기로 교체하기로 했다.
얼마 전 지진을 겪은 네팔에 ‘119토일렛’이라는 접이식 종이 양변기를 보내는 운동을 시작한 데 이어 ‘분뇨분리 변기’ 개발에도 들어갔다. “오줌에 들어 있는 질소와 인이 녹조 등 수질 오염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이에요. 우리 선조들이 오줌을 따로 모으는 ‘오줌장군’을 만들어 오줌을 비료로 사용했듯이 오줌만 따로 분리할 수 있는 변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화투의 ‘똥광’과 ‘비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여줬다. “현재 세계에서 10억명이 먹는 물이 부족하고 20억명이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 고통받고 있어요. 이것을 제가 가진 빗물 활용 기술과 세 가지 변기(119토일렛, 절수 변기, 분뇨분리 변기) 개발을 통해 풀어주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대지진' 네팔에 종이 변기 전달…물 없이도 용변 처리 가능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에 ‘119토일렛’이라는 긴급구호용 접이식 종이 양변기를 보내는 활동을 5월부터 벌이고 있다. 119토일렛은 접을 수 있는 튼튼한 골판지와 텐트 등으로 구성돼 어디서나 쉽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한 교수와 사회적 기업인 위시테크가 공동 개발한 이동식 변기다. 지진 등 각종 재난으로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 기존 수세식 변기를 쓸 수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한 교수는 “과거 아이티나 중국 쓰촨성 지진 때도 간이 화장실 공급이 늦어 용변 처리가 어려워지면서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했다”며 “물을 쓰지 않으면서도 최대 15일간 안전하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악취 등을 예방하는 생화학제와 생분해 비닐팩을 함께 넣었다”고 말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간편하게 용변을 볼 수 있어 재난 현장은 물론 올레길이나 외딴섬 등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포털 다음의 ‘뉴스펀딩’에서 119토일렛을 네팔에 보내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인천 명현초등학교 5학년 학생 92명이 장터를 열어 여기서 모은 수익금 전액을 119토일렛을 네팔에 보내는 데 써달라며 한 교수에게 전달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