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조용할 날이 없다. 끝을 모르고 오르던 중국 증시의 기세는 약해졌다.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한 불안한 소식들이 연일 신문지상을 채우고 있다. 그래도 주식은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주식을 이길 수 있는 자산은 없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커 보이는 변동성도 길게 보면 큰 의미가 없다.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 미국 증시의 급락도 장기 그래프에서 보면 잠깐 멈칫한 흔적에 불과했다. 그래서 주식은 언제나 낙관론자가 이기는 법이다. ‘시장은 불안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말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주식의 본질적인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경기·정책 그리고 시장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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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식시장을 전망할 때의 첫걸음은 경기 진단이다. 세계 경기를 짧게 요약하면 미국 경기는 회복 중이나 회복세가 강하진 않다. 그런 가운데 유로존의 경기가 반등하고 있으며 일본 경기는 예상외의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신흥국 경기는 지역별 편차가 다소 있지만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이런 경기 흐름에서 각 지역별로 다양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정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여지는 크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에 미치는 영향 역시 크지 않다. 그래서 현재 투자자들은 통화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 통화정책은 기축통화 및 준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선진 3개국 중앙은행의 정책이 핵심이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이 주인공이다. Fed는 11년 만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다.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연내 인상할 가능성을 짙게 내비치고 있다. 전 세계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르면 9월, 늦어도 12월에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CB는 지난 1월 대규모 양적 완화를 결정해 3월부터 시행했다. 내년 9월까지 총 1조1400억유로어치의 채권을 매입할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아베 신조 총리의 취임에 맞춰 1차 양적 완화를 시작했고 지난해 핼러윈데이에 깜짝 2차 양적 완화를 했다. 추가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 약해졌지만 경기회복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필요하면 정책이 발표될 수 있다.

경기와 정책 진단이 끝나면 시장을 볼 차례다. 시장은 주가가 비싼지 싼지를 의미하는 ‘밸류에이션’과 기업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뜻하는 ‘기업이익 전망치’로 쪼개볼 수 있다. 두 수치를 곱하면 ‘주가’다. 두 숫자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상하면 주가 변화를 전망할 수 있다. 이틀을 바탕으로 주요 시장을 전망해보자.

강달러 환경이 부담스러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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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은 그동안의 상승세를 이끌어왔던 밸류에이션과 기업이익 전망치의 동반 상승세가 올 들어 멈췄다. 그 결과 주가도 보합 흐름을 보였다. 기업이익 전망치가 둔화된 것은 작년 4분기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업종이 타격을 받은 영향이다. 달러 강세로 미국 기업들의 해외시장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 것도 부담이 됐다. 미국 주식을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할 매력이 줄어든 셈이다.

문제는 달러 강세 요인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Fed가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 속에 유로존이 양적 완화를 하면서 달러 강세가 시작됐다. 달러가 워낙 빠르게 강해졌던 만큼 속도를 조절하는 시간을 갖고 있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의 약세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고 Fed도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므로 시장은 우상향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강달러 환경 때문에 상승 기대는 크지 않다.

그리스 우려로 매력 높아진 유로존

유로존 주식은 올해 밸류에이션과 기업이익 전망치가 모두 상승했다. 밸류에이션 상승에는 ECB의 양적 완화가 큰 몫을 했다. 주가부양 기대에다 글로벌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양적 완화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유로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2년여 동안 기어가던 기업이익 전망치가 본격적으로 반등한 이유다. 양적 완화를 전후로 유로존의 주가는 꽤 비싼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 이슈로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으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을 크게 덜어냈다. 그리스 문제가 통제되는 분위기로 흐른다면 글로벌 자금은 다시 가격 매력이 높은 유로존으로 밀려들 전망이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약세가 완만해졌지만 여전히 지난해에 비해서는 약 20% 평가절하된 ‘유로화 약세 환경’이다. 유로 약세의 수혜를 입고 기업이익 전망치의 상향 조정세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방면의 매력 포인트를 가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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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올해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시장’이었다. 밸류에이션과 기업이익 전망치 모두 견조하게 상향조정되면서 닛케이225지수는 16% 상승했다. 유로존 증시와는 달리 통화약세 효과에 기대지 않은 진성랠리를 펼쳤다. 정부가 주도한 매수세도 주가 상승에 기여했다. 일본은행이 연간 3조엔 규모로 일본 주식을 매수하고 있고, 공적연금펀드(GPIF)도 포트폴리오 비중 변경을 통해 일본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 일본은행과 GPIF의 매수세뿐만 아니라 대형 연기금도 GPIF의 자산별 비중 변화에 맞춰 일본 주식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작업도 차례대로 진행되고 있다.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식은 여전히 가격 부담이 높지 않은 편이다. 수급 가격 이익 등 다방면의 매력이 살아 있어 하반기에도 의미 있는 상승 흐름이 전망된다.

금리인상 전까지 조심스런 신흥시장

작년 4분기 유가 하락과 가파른 달러 강세로 신흥시장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투자자들은 오히려 급락한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세를 보였다. 그 결과 신흥시장의 상반기 수익률은 선진시장을 웃돌았다. 급등한 중국을 제외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시장 주식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환율이다. 신흥국의 통화가 약세흐름을 보이면 신흥국 자산의 가치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흥시장의 주식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기준금리 인상 전의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면 신흥시장 통화는 다시 강세로 전환했다. 그런 점에서 변동성이 높은 신흥시장의 주식투자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지켜본 뒤 나서더라도 늦지 않아 보인다.

김일혁 <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 Cross-Asset 연구원 holistic@hanaf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