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연출, 고용부 각본…노동계에 휘둘리는 최저임금
지난 3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 오후 7시30분 저녁식사를 마치고 회의를 속개하자마자 격론이 벌어졌다. 세 시간 넘게 토론한 주제는 내년도 최저임금액이 아닌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위한 연구용역 발주’ 문제였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해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자’는 경영계 주장에 노동계가 반대하면서 토론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반면 ‘현행 시급으로만 표기하는 최저임금을 월급으로도 표기하자’는 노동계·공익위원 의견은 통과됐다.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올해 최저임금 협상은 과거 어느 해보다 노동계에 힘이 실렸다. 여기에 정치권의 주문을 받은 정부가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을 대폭 교체하면서 노동계가 협상 주도권을 쥔 형국이다.

최저임금위는 공익·근로자·사용자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합의가 우선이지만 최악의 경우 표결로 최저임금액이 결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공익위원의 성향이 최저임금 결정에 결정적이다.

특히 올해는 공익위원 5명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는데, 올해 새 공익위원 7명 중 4명은 국책 연구기관 소속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겠다는 ‘연출자(정치권)’의 뜻을 받아 고용부가 ‘각본’을 짜고 여기서 자유롭기 힘든 ‘배우’들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한 공익위원이 예고없이 ‘시급·월급 병기’안을 제시했고, 노동계의 박수 속에 당황한 경영계 위원 9명은 전원 퇴장했다.

경영계는 항의의 뜻으로 지난달 29일 회의에 불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영계는 3일 회의에 참석, 병기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경영계가 요구한 업종별 차등화 제안은 추후 검토 과제로 올리기로 했다.

최저임금위 안팎에서는 ‘최경환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내년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3%포인트 정도는 정치권에서 기본으로 깔아줬다는 이야기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은 애초 1만원이었다. 경영계는 동결을 요구했다. 이후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노동계는 8400원을, 경영계는 5610원을 제시했으나 최종 절충점은 6000원대일 것이라는 점에는 노사 모두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놓은 상황에서 노동계의 수정안은 ‘큰 양보’로 비치고, 경영계의 수정안은 ‘인색하다’는 인식을 줬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협상에 “사업주의 지급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지키지도 못할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것은 소상공인을 범법자로 만들 뿐”이라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세종=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