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재 덮인 협곡을 오르면 선물 같은 에메랄드빛 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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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t에 달하는 화산재가 쏟아졌다. 1991년 폭발한 피나투보 화산은 주변 풍경을 싹 바꿔놓았다. 약 100억t의 마그마가 분출됐고 화산재는 지상에서 40㎞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화산재가 햇빛을 차단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0.5도가량 내려갔다고 한다. 사상자와 이재민도 많아 20세기의 대표적인 재앙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도 치유됐다. 화산재가 쌓인 산은 트레킹 명소로 거듭났다. 정상에는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호수가 여행자를 반긴다.
화산재에 사라진 인간의 문명
71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다. 지금도 22개의 활화산이 활동 중이다. 필리핀 활화산 중에서 유명한 것은 피나투보(Pinatubo·1485m) 화산이다. 600년의 침묵을 깨고 일어난 1991년의 대폭발은 20세기 최대의 화산 폭발로 기록될 만큼 강력했다. 폭발 당시 산의 거의 절반이 사라졌고, 화산재는 8500㎞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날아갔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화산은 인기 관광지가 됐다. 그 아이러니가 생경하기만 하다.
피나투보로 가려면 필리핀 중부 딸락주의 산타 훌리아나를 거쳐야 한다. 수도 마닐라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일반 승용차로는 엄두도 못 낸다. 사륜자동차를 타고 험준한 산악지역을 지나야 한다. 차를 타고 가다 엔진을 식히고 냉각수도 점검해야 한다. 얕은 개울을 건너고 자갈길, 바윗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가다 보면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황량한 땅과 절벽이 나온다. 대폭발 전에는 미군 공군기지였던 곳이다. 커다란 건물들과 활주로가 있었는데 화산재 때문에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사막을 달리는 것 같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화산폭발로 생긴 호수의 평화로움
피나투보 중턱의 온천지대를 출발해 1시간 정도 걸어 오르면 산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길은 협곡을 따라 이어진다. 골짜기마다 용암과 화산재에 깎인 절벽들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절벽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손톱으로 긁어놓은 것처럼 거칠게 파여 있다. 모두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이다. 걷다 보면 진한 유황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정상에 가까워지면 숲과 작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에서 목을 축일 수 있다. 시원하고 달콤한 화산 암반수다. 힘겹게 도착한 산 정상은 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정상에 놓여 있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보는 듯하다. 화산 폭발로 생긴 이 호수는 둘레가 약 2.5㎞에 달한다.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은 청년들이 배를 빌려준다. 피나투보 원주민 아이타족이다. 배를 타고 고요한 호수 위로 노를 저어 가다 보면 물결도 잔잔하고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가 마냥 평화롭다. 산이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아이타족은 피나투보 대폭발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노를 젓는 청년 역시 가족과 염소를 잃었다고 했다. “용암이 5m 가까이 솟았고 하루 종일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어요. 지진도 일어나 마치 지옥 같았죠.”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다. 피나투보가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여행객을 대상으로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은 때로 거칠고 무섭다.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이 경이롭다. 안 가면 아쉬울 여행지
푸닝온천서 화산재 찜질 "몸속 독소 빼준대요"
피나투보 화산 근처의 온천에서 화산재 찜질을 해볼 수 있다. 피나투보 산 정상에서 5㎞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푸닝온천의 운영자는 한국인이다. 화산 폭발 뒤 생겨난 온천지대를 투자해서 명소로 키웠다고 한다. 화산재 찜질은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고 피부를 소독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이후 노천 욕탕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온천하는 것도 좋다. 1990년대까지 미국 공군기지가 있었던 클라크가 여기서 가깝다.
피나투보(필리핀)=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화산재에 사라진 인간의 문명
71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다. 지금도 22개의 활화산이 활동 중이다. 필리핀 활화산 중에서 유명한 것은 피나투보(Pinatubo·1485m) 화산이다. 600년의 침묵을 깨고 일어난 1991년의 대폭발은 20세기 최대의 화산 폭발로 기록될 만큼 강력했다. 폭발 당시 산의 거의 절반이 사라졌고, 화산재는 8500㎞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날아갔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화산은 인기 관광지가 됐다. 그 아이러니가 생경하기만 하다.
피나투보로 가려면 필리핀 중부 딸락주의 산타 훌리아나를 거쳐야 한다. 수도 마닐라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일반 승용차로는 엄두도 못 낸다. 사륜자동차를 타고 험준한 산악지역을 지나야 한다. 차를 타고 가다 엔진을 식히고 냉각수도 점검해야 한다. 얕은 개울을 건너고 자갈길, 바윗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가다 보면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황량한 땅과 절벽이 나온다. 대폭발 전에는 미군 공군기지였던 곳이다. 커다란 건물들과 활주로가 있었는데 화산재 때문에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사막을 달리는 것 같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화산폭발로 생긴 호수의 평화로움
피나투보 중턱의 온천지대를 출발해 1시간 정도 걸어 오르면 산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길은 협곡을 따라 이어진다. 골짜기마다 용암과 화산재에 깎인 절벽들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절벽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손톱으로 긁어놓은 것처럼 거칠게 파여 있다. 모두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이다. 걷다 보면 진한 유황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정상에 가까워지면 숲과 작은 계곡이 있는데 이곳에서 목을 축일 수 있다. 시원하고 달콤한 화산 암반수다. 힘겹게 도착한 산 정상은 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거대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정상에 놓여 있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보는 듯하다. 화산 폭발로 생긴 이 호수는 둘레가 약 2.5㎞에 달한다.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은 청년들이 배를 빌려준다. 피나투보 원주민 아이타족이다. 배를 타고 고요한 호수 위로 노를 저어 가다 보면 물결도 잔잔하고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가 마냥 평화롭다. 산이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아이타족은 피나투보 대폭발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노를 젓는 청년 역시 가족과 염소를 잃었다고 했다. “용암이 5m 가까이 솟았고 하루 종일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어요. 지진도 일어나 마치 지옥 같았죠.”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다. 피나투보가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여행객을 대상으로 돈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은 때로 거칠고 무섭다.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이 경이롭다. 안 가면 아쉬울 여행지
푸닝온천서 화산재 찜질 "몸속 독소 빼준대요"
피나투보 화산 근처의 온천에서 화산재 찜질을 해볼 수 있다. 피나투보 산 정상에서 5㎞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푸닝온천의 운영자는 한국인이다. 화산 폭발 뒤 생겨난 온천지대를 투자해서 명소로 키웠다고 한다. 화산재 찜질은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고 피부를 소독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이후 노천 욕탕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온천하는 것도 좋다. 1990년대까지 미국 공군기지가 있었던 클라크가 여기서 가깝다.
피나투보(필리핀)=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