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가 에너지 관련 기업 투자에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초 국제유가가 급락했을 때 미국 에너지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던 사모펀드가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투자 지역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나중에 유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할 때에 대비해 값이 떨어진 에너지 관련 기업의 주식·채권을 사들이거나 자산 가치가 낮아진 노후 유전을 매입하는 식이다. 미국의 CNN머니는 “고수익을 좇아 빠르게 옮겨다녀 ‘스마트 머니’로 불리는 사모펀드들이 할인 기간에 반값 쇼핑을 하듯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쌀 때 사놓자" 에너지기업 쓸어담는 사모펀드
지분 투자에 노후 유전 매입도

19일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사모펀드의 원유와 가스 부문 투자액(북미지역 제외)은 약 36억달러(약 3조9900억원)다. 프레킨은 2분기 들어 가팔라진 투자 속도를 감안했을 때 올해 투자액이 작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투자액은 114억달러로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기 전인 2013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은 최근 북해지역 유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나이지리아 유전 중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유전 서비스업체 인수도 고려 중이다. 칼라일그룹은 “저유가로 지금이 에너지 관련 기업이나 자산 인수를 위한 최적의 기회”라며 “사모펀드의 에너지 관련 투자 열기는 앞으로 2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사모펀드 CVC캐피털파트너스는 영국 에너지 기업 센트리카를 통해 북해지역 신규 유전 개발과 가스전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역시 연내 에너지 부문 투자에 80억달러를 쏟아부을 방침이다. 신속한 투자 결정과 집행을 위해 최근 에너지 투자 부서를 뉴욕에서 세계 원유 거래의 중심지인 런던으로 옮기기도 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북미지역 외에서 에너지 부문 투자를 늘리기 위해 관련 인력을 충원하고 싸게 매입할 수 있는 오래된 유전을 찾고 있다.

“유가의 추세적 상승 가로막아”

작년 하반기 이후 유가 급락에 따라 경영 악화에 시달리는 에너지 기업 간 통폐합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유가는 미국의 셰일혁명에 따른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겹쳐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으로 작년 6월 고점 대비 45%가량 떨어진 상태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기업 간 인수합병(M&A)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커진 것도 에너지업계 M&A 영향이다. 지난 4월 세계 2위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이 영국 3위 원유·천연가스 생산 기업 BG그룹을 인수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에너지업계 M&A 수요가 급증하면서 사모펀드들은 지분 투자에 대한 차익 실현에 나섰고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는 “사모펀드들이 올 들어 미국 셰일혁명에 직격탄을 맞은 서아프리카와 아시아지역의 소규모 원유 프로젝트를 상당부분 사들였다”며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탐사와 서비스부문에 대한 방대한 투자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모펀드의 공격적인 투자가 유가의 추세적인 상승 전환을 방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모펀드 등에서 나온 뭉칫돈이 에너지업계로 꾸준히 유입되면서 저유가로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조차 파산하지 않고 있다는 논리다.

안톤 슈나이더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는 “대형 사모펀드는 항상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자산에 관심을 갖는다”며 “유가가 바닥에 근접했다는 전망이 퍼져 있는 데다 고평가됐던 에너지 기업들의 거품도 빠진 만큼 당분간 사모펀드의 공격적인 저가 매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