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철길 위 문학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의 소재로 철도만 한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도는 현대문명의 상징으로서 시시각각 수백 명의 사람을 태워 나른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사연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다양한 문학적 소재로 쓰였다. 정차역 외의 장소엔 멈출 수 없는 철도의 숙명은 교류와 단절을 동시에 표현하고, 또 현실의 탈출구로서 묘사된다.

철도가 나오는 문학작품으로 영화와 노래로 더 익숙한 ‘고래사냥’이 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의 원작은 최인호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고래사냥’은 어디론가 탈출해야만 하는 1980년대 젊은이들의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방황하는 청년들의 아픔을 담아낸 ‘고래사냥’은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특히 입영열차가 막 떠나려는 순간 남녀주인공이 열차에 매달려 입 맞추는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세계 문학작품 속에도 철도는 자주 등장한다. 역시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러시아 최대의 사건인 러시아혁명 속에 놓인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광활한 대륙에서 역사의 물결에 휩쓸리던 한 인간. 그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선택했다. 열차에서 바라본 광활한 대지는 벌거벗고 메말라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생명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아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 역시 철도 문학작품이다. 영화로 제작돼 널리 알려진 ‘철도원’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사라져가는 간이역을 지키는 철도원의 이야기다. 철도원으로서 역을 지켜야 하는 소명과 가족에 대한 애환을 담고 사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성실하고 근면한 우리 직원들과 많이 닮아 있어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특히 딸의 혼령이 찾아와 철도원의 회한 많은 삶을 어루만져주고, 그의 굴곡진 삶에 경례를 바치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코레일은 철도문화재단과 ‘철도의 날’인 9월18일 국민공모를 통해 철도문학상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시와 수필, 단편소설 등 철도를 주제로 한 순수창작 문학작품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철도 문학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최연혜 < 한국철도공사 사장 choiyeonhye@kor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