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유린타운’…“여기가 바로 유린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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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을 싸려면 돈을 내야 한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길바닥에 쌀 수도 없다.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나타난 경찰들은 화장실 무료 이용객을 그 누구도 본적 없는 끔찍한 마을, ‘유린타운’으로 끌고 가버린다. ‘유린타운’으로 떠난 사람은 돌아온 전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유료 화장실에서 일하던 청년 ‘바비’가 아버지를 ‘유린타운’에 빼앗긴 후,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따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다. 드디어 혁명이다. 마음껏 쌀 자유를 위한!
뮤지컬 ‘유린타운’은 직역하면 ‘오줌마을’이라는 뜻이다. 괴상한 줄거리에 어울리는 괴이한 제목이다. 실제 무대는 더욱 유별나다. 무대에는 화자 역할을 하는 록스탁 경감이 등장해 “이 뮤지컬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닙니다”라고 경고하고, 또 다른 화자인 리틀 샐리는 “무슨 뮤지컬이 이래요?”라며 투정한다. 객석에는 ‘대체 이게 뭐지?’라는 갸우뚱한 고갯짓이 여럿 포착된다.
작품은 브레히트 서사극의 특징인 ‘소외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소외효과는 어떤 사건에 대해 관객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취할 수 있도록 ‘몰입’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극중 화자인 록스탁과 리틀 샐리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틈틈이 중요한 사건마다 등장해 이야기와 관객의 밀착을 훼방 놓는다. 동시에 관객이 충분히 사유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관객은 이야기와 캐릭터로부터 격리되면서 무대 위를 환상이 아닌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지독한 부조리극이자 블랙코미디다. 독점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지배자들과 혁명을 통해 기존의 억압을 찢고 자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극 내내 거칠게 부닥친다. 반란으로 인해 강압에 의해 존재했던 질서는 혼란해지고, 세상에는 새로운 질서가 태어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질서도 ‘옳은 것’은 아니다. ‘반란’과 ‘혁명’이 이음동의어로 읽히는 아이러니처럼,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뮤지컬 속 ‘유린타운’은 여전히 부조리하다.
반면 작품 전반에는 소위 ‘병맛’이라 칭하는 개그코드가 넘실댄다. 예를 들어, 드러난 ‘유린타운’의 진실 앞에 살해당한 ‘바비’가 천사링과 날개를 달고 나온다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오글거림의 절정으로 터져나온던가 하는 식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패러디가 등장할 땐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하지만 무대와 연출의 공력은 그다지 탄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극장 무대라기에 세트의 단조로운 운용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연출은 이야기의 주제를 무대에 충실히 옮기는 덴 성공했지만, 작품의 살아있는 개성을 충분히 발색하지는 못한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시작은 쉽지만 끝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유료화장실 독점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던 클로드웰이 ‘유린타운’으로 끌려간 뒤, 그 빈자리에는 민중들과 한 편이 된 ‘호프’가 앉게 된다. 이쯤 되면 ‘해피엔딩’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불공평한 세상에 항거한 민중 승리의 외침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과 ‘희망’을 기치로 ‘무료 화장실’을 운영했던 ‘호프’와 그녀를 따랐던 민중들은 곧 물 부족의 난관에 봉착한다. 민중들은 때때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있었던 ‘클로드웰’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결국, 문제는 다시 되돌아온다. 끝나지 않는 ‘부조리의 회귀’, 극장을 나서고서도 이야기를 계속 곱씹게 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작품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돈으로 투표를 조작하는 클로드웰과 상원의원의 결탁은 정경유착의 세태를, 사기업에 의한 민영화는 여전히 양날의 검으로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불온한 사건들과 상당부분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극장을 돌아 나설 때 쯤에는 생각의 골이 뇌리 속에 깊게 패어있다. 뮤지컬 ‘유린타운’이 10년 만에 돌아오게 된 일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8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와우스타 정지혜기자 wowstar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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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을 싸려면 돈을 내야 한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길바닥에 쌀 수도 없다.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나타난 경찰들은 화장실 무료 이용객을 그 누구도 본적 없는 끔찍한 마을, ‘유린타운’으로 끌고 가버린다. ‘유린타운’으로 떠난 사람은 돌아온 전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유료 화장실에서 일하던 청년 ‘바비’가 아버지를 ‘유린타운’에 빼앗긴 후,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따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다. 드디어 혁명이다. 마음껏 쌀 자유를 위한!
뮤지컬 ‘유린타운’은 직역하면 ‘오줌마을’이라는 뜻이다. 괴상한 줄거리에 어울리는 괴이한 제목이다. 실제 무대는 더욱 유별나다. 무대에는 화자 역할을 하는 록스탁 경감이 등장해 “이 뮤지컬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닙니다”라고 경고하고, 또 다른 화자인 리틀 샐리는 “무슨 뮤지컬이 이래요?”라며 투정한다. 객석에는 ‘대체 이게 뭐지?’라는 갸우뚱한 고갯짓이 여럿 포착된다.
작품은 브레히트 서사극의 특징인 ‘소외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소외효과는 어떤 사건에 대해 관객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취할 수 있도록 ‘몰입’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극중 화자인 록스탁과 리틀 샐리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틈틈이 중요한 사건마다 등장해 이야기와 관객의 밀착을 훼방 놓는다. 동시에 관객이 충분히 사유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관객은 이야기와 캐릭터로부터 격리되면서 무대 위를 환상이 아닌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지독한 부조리극이자 블랙코미디다. 독점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지배자들과 혁명을 통해 기존의 억압을 찢고 자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극 내내 거칠게 부닥친다. 반란으로 인해 강압에 의해 존재했던 질서는 혼란해지고, 세상에는 새로운 질서가 태어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질서도 ‘옳은 것’은 아니다. ‘반란’과 ‘혁명’이 이음동의어로 읽히는 아이러니처럼,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뮤지컬 속 ‘유린타운’은 여전히 부조리하다.
반면 작품 전반에는 소위 ‘병맛’이라 칭하는 개그코드가 넘실댄다. 예를 들어, 드러난 ‘유린타운’의 진실 앞에 살해당한 ‘바비’가 천사링과 날개를 달고 나온다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오글거림의 절정으로 터져나온던가 하는 식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패러디가 등장할 땐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하지만 무대와 연출의 공력은 그다지 탄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극장 무대라기에 세트의 단조로운 운용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연출은 이야기의 주제를 무대에 충실히 옮기는 덴 성공했지만, 작품의 살아있는 개성을 충분히 발색하지는 못한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시작은 쉽지만 끝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유료화장실 독점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던 클로드웰이 ‘유린타운’으로 끌려간 뒤, 그 빈자리에는 민중들과 한 편이 된 ‘호프’가 앉게 된다. 이쯤 되면 ‘해피엔딩’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불공평한 세상에 항거한 민중 승리의 외침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과 ‘희망’을 기치로 ‘무료 화장실’을 운영했던 ‘호프’와 그녀를 따랐던 민중들은 곧 물 부족의 난관에 봉착한다. 민중들은 때때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있었던 ‘클로드웰’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결국, 문제는 다시 되돌아온다. 끝나지 않는 ‘부조리의 회귀’, 극장을 나서고서도 이야기를 계속 곱씹게 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작품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돈으로 투표를 조작하는 클로드웰과 상원의원의 결탁은 정경유착의 세태를, 사기업에 의한 민영화는 여전히 양날의 검으로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불온한 사건들과 상당부분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극장을 돌아 나설 때 쯤에는 생각의 골이 뇌리 속에 깊게 패어있다. 뮤지컬 ‘유린타운’이 10년 만에 돌아오게 된 일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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